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파리 신혼여행의 추억 (2) - 인종차별 본문

여행을 가다

파리 신혼여행의 추억 (2) - 인종차별

빛무리~ 2013. 1. 9. 10:30
반응형

 

 

*** 어제 올렸던 제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파리의 한 백화점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힘겹게 헤매던 중... 한 백인 여자가 어떤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안에서 분명히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그 곳이 화장실인 건 틀림없었죠. 앞뒤 생각할 것 없이 급하니까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문을 거의 닫으려는 순간 밖에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오더군요. "농, 농, 농 (Non, Non, Non)!!!" 순간 저는 그냥 재빨리 문을 닫고 잠가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이 낯선 곳에서 그런 행동을 하고 난 후의 뒷처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세상'에서 제대로 기가 죽은 (한 마디로 완전 쫄은) 거였죠.

 

쭈뼛거리는 사이에 한 백인 여자가 사납게 문을 열고는 제 팔을 마구 잡아끌다시피 해서 쫓아냈습니다. 불어로 뭐라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충 여기는 직원용 화장실이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인간적인 차원에서 사람을 그렇게 쫓아내는 건 아니다 싶었죠. 확실히 그들의 눈에 우리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매몰차게 쫓겨난 후 대략 20분 정도 화장실을 찾아 헤맸지만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가르쳐 주는 외국인은 한 명도 없었고요. 급기야 글썽글썽 고이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리더군요.

 

 

그러다가 다행히도 어느 화장품 코너에서 한국인 직원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우리에게 아주 친절한 한국말로 정확한 화장실 위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찾지 못했을, 그 앞에 아무런 표지판도 없고 주변 환경도 대체 화장실이 있을법해 보이지 않는, 마치 일부러 숨겨놓은 것처럼 꼭꼭 숨어 있는 한구석의 화장실이었습니다. 중국인쯤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들이 그 앞에 대략 6~7명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줄 서 있는 모습이 질서정연하지 않고 난잡해서 그 곳이 화장실인 줄 모르고 보았다면 그냥 모여서서 웅성거리는 듯이 보였을 모양새였습니다. 어쨌든 별 수 없이 맨 끝에 줄을 서서 볼일을 해결하고 나니, 대충 다른 커플들의 아이쇼핑도 끝나 있더군요. 그야말로 서러운 눈물의 화장실 찾기였습니다.

 

이 곳의 문화로는 원래 그런 상황이 당연한 건지, 신랑은 외국 생활까지 해 본 사람이지만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일정 마지막 날 오전, 약속대로 우리 부부를 공항으로 태워다 줄 한국인 가이드가 숙소로 방문했습니다. 투어를 안내했던 가이드와는 또 다른 사람이더군요.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신랑은 가이드에게, 제가 백화점 화장실에서 무참하게 끌려나온 이야기를 하며 여기는 원래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이드는 "어떻게 그런 몰상식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면서 깜짝 놀라더군요. 하지만, 글쎄 모를 일이죠. 프랑스 현지에 체류하며 한국 여행객들을 안내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그로서는 최대한 프랑스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여긴 원래 그래요" 라고 말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4. 수퍼에서 생긴 일, 잔돈이 없다고 마구 성질부리던 계산원

 

 

배탈도 났고 해서, 더 이상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숙소 근처에 마트가 있다기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때 가이드에게 위치를 물어 놓았다가 저녁 8시쯤 신랑과 둘이 찾아갔죠. 물과 함께 간식으로 먹을 비스킷 등을 사서 계산하러 갔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제가 슬쩍 계산대의 모니터 화면을 보았습니다. 찍힌 숫자는 10.52 였어요.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비행기 값을 비롯한 식비 및 여행 경비 일체를 한국에서 미리 결제했지만, 현지에서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니 약간의 유로를 환전해 가지고 갔었죠. 그런데 한국의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는 최저 단위의 유로는 5유로 화폐였습니다.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동안에는 쓸 일이 없다가 그 수퍼마켓에서 처음으로 꺼낸 유로였어요. 숫자를 보니 10유로가 살짝 넘었기에, 저는 5유로짜리 지폐 3장을 내밀었습니다.

 

돈을 받은 여자 계산원은 우리에게 뭐라뭐라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말없이 계산하고 거슬러 주면 좋으련만, 당최 알아들을 수도 없는데 자꾸만 뭐라 하니까 무척 난감하더군요. 어쨌든 계산은 안 해주고 계속 뭐라 하길래, 뭔가를 더 요구하는 듯해서 별 수 없이 지갑 속에 있던 유로화폐를 뭉치째로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계산원은 마구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뭐라 쏘아붙이더니 몇 개의 동전을 꺼내서 제 손에 거의 던지다시피 건네주는 거였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제가 처음에 냈던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왜 잔돈을 내지 않느냐고 불평을 했던 겁니다. 거슬러 받은 동전을 살펴보니 2유로, 1유로, 50센트, 10센트 등의 단위였습니다. 10.52유로가 나왔으니 10유로와 52센트를 내야 하는데, 제가 15유로를 냈다는 이유로 그렇게 화를 냈던 거였죠. 하지만 잔돈이 없다는 게 그렇게 화낼 일입니까? 역시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5. 물을 주지 않는 비행기, 갈증과 싸웠던 21시간

 

 

우리 부부는 일정상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편을 이용했고, 파리 직항이 아니라 아랍의 두바이를 거쳐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외국 비행기에는 원래 그토록 물이 귀한 건지, 맛도 없는 기내식은 충분히 배 터질 만큼 주면서 지급되는 물의 양은 턱없이 적었습니다. 한국에서 파리로 갈 때는 그로 인한 큰 불편을 못 느꼈지만, 되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사정이 달랐어요. 파리에서 물을 충분히 못 마신 데다가 배탈까지 났던 후라 굉장히 수분이 부족했거든요. 

그런데 여객기 내에 지니고 들어가는 짐의 경우는 액체가 엄격히 제한됩니다. 한 병에 100ml를 넘기면 안 되는 등 규제가 많다 보니 현실적으로 비행기에 식수를 가지고 타기는 힘든 일이었어요. 까다로운 출국 심사를 거쳐 공항 내에서 아주 비싼 값에 물 한 병을 사서 신랑과 나눠 마셨지만, 비행기 탑승까지 대기 시간이 길다 보니 금세 목은 다시 말라 왔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물을 마실 수 있으려니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기내식에는 간장종지만한 플라스틱 통에 달짝지근한 오렌지쥬스가 담겨있을 뿐... 몇 차례나 물을 달라고 해도 스튜어디스는 대답만 하고 갖다 주지 않더니만, 나중엔 "쉽지 않겠지만 노력은 해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감감무소식... 도대체 물 한 잔이 너무나 귀한 비행기였어요.

 

 

단 것을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질 수 있는 데다가, 물과 차와 쥬스 등 모든 음료는 컵에 담아 주는 양도 진짜 병아리 눈물 만큼 너무 적었기 때문에, 갈증에 시달리던 신랑과 저는 기회가 되는 대로 캔맥주를 받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음료 중에 달지도 않고 제일 양이 많은 것이 맥주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맥주의 나쁜 점은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는 것... 불행히도 통로 쪽이 아니라 안쪽에 자리잡고 있던 우리는 통로 쪽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계속 참다가 더 이상 못 참게 될 경우에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10시간 비행 중 기껏 두 번이나 갔는지 모르겠어요.

 

또 이 비행기에서는 어찌된 셈인지, 기내식을 먹은 후 그 식판을 얼른 치우지 않고 대략 1시간 정도나 그냥 놔 둔 채 있더군요. 일반석의 공간은 가뜩이나 좁아서 옴짝 달싹도 할 수 없는데, 큼직한 식판을 치워주지 않으니 승객들은 그 불편함을 어쩌지도 못한 채 긴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천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비행기에서 단 한 명의 부지런한 여승무원이 비워진 식판들을 재빨리 치우는 것을 보고서야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이제껏 식판에 갇혀 있어야 했던 이유는 단순히 승무원들의 게으름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앞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초보 여행자들에게, 좀 비싸더라도 가급적이면 국내 항공편을 이용할 것을 권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항공에서는 설마 물 한 잔에 이토록 인색하지는 않을 것이고, 식판도 빨리 치워줄 테니까요. 고객 서비스를 이 모양으로 해 가지고서는 한국 고객들의 열화와 같은 민원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처럼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파리는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 기억에 남은 곳은 몽마르뜨 언덕이었어요. 처음에는 주류 아닌 비주류로 시작되었던 문화의 거리, 재능 외에는 가진 것 없없던 가난한 화가들의 거리... 그래도 다른 장소들에 비해서는 순수함이 많이 남아있고 덜 상업화된 곳인 듯 느껴졌습니다. (몽마르뜨는 아침 일찍 방문해서 비교적 사람이 적고 한산한 거리를 여유롭게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임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요..ㅎ) 그리고 촉박한 여행 일정상 좀 더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채 떠나왔던 노틀담 성당은,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프랑스를 방문하고 싶은 한 가닥의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물론 제가 원했던 중세의 문화를 보고 낭만을 느끼기에는 어느덧 너무나 상업화 되어버린 곳이기도 했지요.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던 에펠탑과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세느강까지... 모두 철저한 계획하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냥 한 눈에도 보였거든요. 워낙 잘 꾸며놓고 투자와 홍보를 많이 하니까, 아무리 불친절해도 해외 여행객은 계속 밀려들고...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도 그보다 못할 게 없건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의 어리숙함에 비하면 참으로 영악한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달픈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는 드디어 우리의 홈그라운드에 도착했다는 행복한 안도감과 벅찬 반가움에 너무 기뻐서 눈물이 왈칵 솟구칠 지경이었어요.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유익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우리 것의 소중함과 고귀함, 우리나라 사람들의 선량함과 친절함을 새삼 절감하게 된 것이었어요. 누구나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제 가슴에 이토록 뜨거운 애국심(?)이 솟구치는 건 정말이지 처음 느껴봤거든요. 그 짧은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지 이제 5일째... 저는 지금도 이 곳 한국 땅에 제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고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여행 체질은 아닌가봐요..^^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