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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케이블 '슈퍼스타K'를 능가하는 잔인함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케이블 '슈퍼스타K'를 능가하는 잔인함

빛무리~ 2012. 9. 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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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KBS에서 가수를 뽑는 또 하나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컨셉과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면, 아마추어들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의 오디션과 달리 과거 앨범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다가 잊혀졌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었죠. 꿈을 거의 이룰 뻔했다가, 또는 아주 잠시 꿈을 이루고 정상에 올랐다가 속절없이 추락야만 했던 사람들... 파릇한 새싹들의 꿈이 희망과 패기로 가득차 있다면, 한 차례 좌절을 경험했던 그들의 미진한 꿈은 훨씬 애절하고 극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점에 흥미를 느꼈던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솔로든 그룹이든 본인들의 음악적 색깔에 따라 활동의 방식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없고, 이 오디션에서 최종 합격한 사람들은 무조건 5인조 그룹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원칙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벌써 음반을 내고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아마추어들보다 더욱 개성도 강하고 자존심도 강할텐데, 왜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굳이 획일화된 원칙을 내세웠을까요?

 

보통의 아이돌 그룹이라면 나이 어린 소년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아직은 각자의 개성적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연습생 과정에서 차츰 맞춰갈 수 있을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라도 본인들 스스로 의기투합하여 결성된 그룹이라면 문제가 적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마오' 참가자들은 이미 각자의 개성과 고집을 지닌 어른들이며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어색한 사이인데, 무조건 5인조 그룹을 결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떠밀려 대충 반강제적으로 뭉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여튼 일단 한 번 보자는 생각에 방송을 시청했지만, 그 동안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귀만 비싸져서인지 '내마오' 참가자들의 실력은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슈스케'나 '위대한 탄생' 등에서 낯선 얼굴의 아마추어들 중 숨겨진 보석을 발견했을 때의 신선한 감동도 없었고, '나는 가수다'라든가 '불후의 명곡'처럼 현역 가수들이 경쟁하는 프로그램과는 더욱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과거 정식 데뷔를 했음에도 가수 생명이 길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여러가지겠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심지어 시나위 보컬 출신의 손성훈이나 '눈물'의 여가수 리아조차도 그 화려한 이력에 비하면 노래는 부족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뭔가 날카로운 비수 한 방이 있어야 할 듯한데, 잘 갈려진 그 칼날의 미세한 떨림과 시퍼런 번뜩임을 저는 느낄 수가 없었어요.

 

노래에서 감동을 받지 못하다 보니, 걸핏하면 펑펑 울어대는 심사위원들의 모습도 적잖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꿈을 잡았다 놓친 사람들인 만큼 저마다 개인적 사연도 구구절절했지만, 무슨 수도꼭지도 아니고 그런 말을 듣는 것만으로 냉정해야 할 심사위원들이 금세 눈물을 철철 흘리는 모습은 민망하더군요.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말입니다. 특히 조성모, 이수영, 아이비 세 사람의 눈물은 몇 번 보고 나니까 식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예전에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가수들이 오디션 참가자로 등장하면, 유난히 감성 풍부하고 마음 여린 이 심사위원들은 또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비해 초라해진(?) 동료의 모습에 가슴아픈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심사위원이라는 사람들이 툭하면 개인적 감상에 젖어 우는 모습은 매우 불편하더군요. 그래 갖고서야 객관적인 심사가 가능할까 의문스럽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지루하고 마뜩찮은 느낌이 강했으나 내친 김에 계속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치열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인원은 애초의 계획과 달리 30명이 아니라 31명이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최초의 미션은 '스스로 5인조 팀을 결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총 6개의 팀이 구성되고, 그 중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최초의 탈락자가 되는 셈이었죠. 그 순간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이건 너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설정이었습니다. 팀 구성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것은 음악성의 문제라기보다 붙임성과 친화력의 문제거든요. 물론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 있어서 누구나 탐내는 사람이라면 별문제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음악적 실력보다 인맥 구축의 능력이 우선시되는 미션이었습니다.

 

물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건, 목소리 작고 소극적인 사람이 불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뮤지션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처음 주어진 미션이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요? 좀 뻔뻔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타인과의 친화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진짜 음악적인 실력은 발휘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첫 발걸음도 떼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물러나야 하다니, 이게 합리적인가요? ... 예상했던 것처럼 5인조 팀의 결성 과정은 볼수록 가관이었습니다. 가장 목소리 크고 적극적이고 유들유들한 몇몇 사람의 주도하에 눈덩이가 뭉치듯 최초의 팀들이 탄생했고, 인원이 적어질수록 초조해진 사람들은 점점 '대충이라도 일단' 팀을 만드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그 과정 중에는 숨겨왔던 이기심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최후로 남겨진 여섯 명은 낭떠러지 위에 선 기분을 느꼈을 겁니다. 무조건 그들 중 1명은 탈락이었으니까요. 결국 '사람과 나무' 출신의 여성보컬 이수경이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았다면 필연적으로 5명이 합심해서 모질고 독하게 1명의 등을 떠밀어 쫓아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수경의 값진 희생과 양보로 인해 다른 5명은 악역을 맡지 않아도 되었던 거죠. "저도 하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소극적인 자세로 물러나는 이수경을 보니 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40대의 주부로서 한 남자의 아내이며 아이들의 엄마인 그녀는, 언제나 가족을 위해 양보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고전적인 여인상을 지녔더군요. 타인들 앞에서 자기 입장을 내세우거나 고집하는 것 자체를 매우 힘겨워하는 그녀였습니다.

 

"제가 끝까지 하겠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너무 괴로울 것 같더라고요... 제가 살아남아야 하는데도, 왜 그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과거에도 이런 문제로 가수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제 가슴이 더욱 아파왔습니다. 낯가죽 좀 얇은 것이 뭐 그리 큰 죄라고 반복된 상처를 끌어 안아야만 하는 건지... 그런데 말이죠, 더욱 황당한 것은 이수경의 양보에 힘입어 무리 없이 마지막 팀 결성에 성공한 5명의 태도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두 이수경에게 감사와 미안함의 인사를 전할 줄 알았고, 그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죠.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두 명쯤은 그녀를 돌아보며 어깨를 두드린다든가 포옹을 한다든가 안타까운 눈빛이라도 보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팀이 결성되자 그들은 자기네끼리만 서로 쳐다보고 신나게 화이팅을 할 뿐, 아무도 한 켠에 홀로 서 있는 이수경을 돌아보지 않더군요. 그 모습들은 정말이지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한 번쯤 고마움과 미안함의 인사를 전한다 해서 손해볼 것도 없을텐데 말이죠. 마치 "나만 아니면 돼!"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한 편의 리얼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특히 25세의 유소라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바보같은 거예요! 착한 게 아니고..." 물론 그녀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시각에 따라서는 배려심 때문에 자기 밥도 못 챙겨먹는 이수경의 행동이 바보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녀의 양보로 대신 배를 채우게 된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노래 실력으로 보나, 과거 활동했던 그룹의 수준으로 보나, 제 생각에는 유소라보다 이수경이 훨씬 나았거든요.

 

 

그룹 '사람과 나무'는 제법 탄탄한 매니아층이 있었고 그 노래 중에도 '쓸쓸한 연가'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었죠. 하지만 '하라소라'라는 걸그룹은 솔직히 금시초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디션에서도 유소라의 힘 없고 가냘픈 목소리가 이수경의 파워 보컬과 비교될 수준은 아니었죠. 그러므로 이수경의 양보와 배려가 아니었다면 유소라의 탈락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거나 미안해하기는 커녕 어쩌면 그렇게도 뻔뻔할 수 있을까요? 이건 새로운 마녀의 탄생이었습니다. 유소라의 인터뷰 장면은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한 '슈스케' 조차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지독히 자극적인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이수경은 다시 한 번 상처받고 꿈을 접은 채 쓸쓸히 돌아섰습니다. 그녀가 문을 나서려 할 때 "잠깐만요" 하고 제작진이 붙잡는 장면에서 혹시 새로운 희망이라도 있을까 싶었지만, 그건 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겠죠. 확실한 건 다음 주 방송을 봐야 알겠지만, 기껏 모든 원칙을 세워놓고 탈락자가 정해졌는데 곧바로 번복한다는 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니까요. "잠깐만요"는 그저 낚시에 불과했을 듯..;;

 

 

어쨌든 이제부터 '슈퍼스타K'는 '악마의 편집'이라는 명성을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내마오'가 '슈스케' 만큼의 인기를 끌고 이슈몰이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잔인하고 자극적인 면에서는 '슈스케'를 훌쩍 넘어선 듯 싶거든요. 더구나 케이블도 아닌 공중파에서 이토록 과감한 자극성을 선보이다니, 정말 대단한 제작진이긴 합니다. 첫 방송을 시청한 제 느낌상 좋은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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