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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모두를 제자리로 보내준 최고의 결말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각시탈

'각시탈' 모두를 제자리로 보내준 최고의 결말

빛무리~ 2012. 9.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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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드라마를 시청하며 그 초점을 '애국'이 아니라 '인간'에 맞추어 왔던 저로서는 어떤 식으로 결말이 지어질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주제가 '애국'인 듯하니까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결론내지 않을까 싶었죠. 그 와중에 '인간'의 '감정'이 묵살될까봐 걱정했던 건 저뿐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각시탈'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그 정신을 수많은 타인들에게 전하여 수천 수만의 각시탈을 탄생시켰으니까요. 이 정도만 해도 '애국'이라는 주제는 충분히 살아난 셈인데, 그 와중에 '사람'도 보여주었으니 더 바랄 것 없는 최상의 결말이라 하겠습니다.

 

1. 여주인공 목단, 드디어 제 역할을 다하다

 

이제껏 여주인공 오목단(진세연)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사 흥분해서 들뜬 모습을 보여주고, 맨날 붙잡힌 주제에 과장되게 정의롭고 용감한 모습을 과시하다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구출되어 달아나고..;; 매번 이런 식의 반복이다 보니 솔직히 그녀를 신뢰하기는 어려웠어요. 아무리 뜻이 곧아도 능력이 없으면... 솔직히 민폐에 지나지 않을 그런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아이가 나서서 뭘 한다고 하면 늘상 불안하기 짝이 없고, 혹시 잘 될지도 몰라 추세를 지켜보면 아니나 다를까 체포되어 미끼나 되고..;; 언제나 목단이의 존재는 이강토(주원)와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싸움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었을 뿐, 본인이 제대로 뭘 한 것을 본 기억은 없었어요. 솔직히 한심했죠.

 

 

게다가 제가 보기엔 복장도 이상하더군요. 선화나 계순이나 채홍주 등 다른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그 시대 배경에 맞춰서 갖은 모양의 치마를 입고 다니는데 (기모노를 입은 채홍주의 아장아장 불편한 걸음걸이를 보며 황당하지 않았던가? ;;) 목단이만 현대 여성들처럼 말끔히 드라이된 정장(?) 바지를 입고 편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더군요. 첫회부터 그랬어요. 제가 원래 등장인물의 복색에 예민한 스타일은 아닌데도, 목단이만의 튀는 복장은 늘 거슬렸습니다. 그 옷 때문에 오목단이라는 캐릭터는 늘상 그 시대에 홀로 떨어진 현대인처럼 겉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닥터 진'의 송승헌이나 '신의'의 김희선보다도 더 튀더군요..;;

 

그렇게 이상한 차림을 하고서도 맨날 일본 제국 경찰에 잡히고, 맨날 미끼나 되고... 언제나 기죽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큰소리는 잘 치지만, 정작 따지고 보면 별로 한 일이 없는, 이제까지 오목단은 그런 캐릭터였어요. 보통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민폐녀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 경우에는 시대 배경이 급박하니 만큼 더욱 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악녀 채홍주(한채아, 우에노 리에)의 캐릭터가 훨씬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어요. 오목단은 독립군이면서도 이래저래 민폐만 끼치고 있는 반면, 채홍주는 적군이면서도 이강토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번번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비교하면 할수록 채홍주는 빛나고 목단이는 빛이 죽는 상황이 되고 말았죠.

 

 

결혼식을 급습한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총탄은 물론 이강토를 겨눈 것이었으나, 마지막 순간 오목단은 자기 몸을 날려 이강토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한 목숨과 한 목숨을 맞바꾼 셈이지만, 이강토는 이 드라마 '각시탈'의 주연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지요. "매일 매일... 따뜻한 밥상을 차려 드리고 싶었는데... 도련님, 힘내세요, 내가 없어도 힘낸다고 약속해 주세요!" 목단이의 마지막 당부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강토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으면서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시간조차 없을 만큼, 두 어깨에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이었으니까요. 각시탈이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이미 조선 민족 전체의 희망이 되어 버렸던 겁니다. 결국 이강토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혼자서도 힘을 내어 독립운동의 한 기둥이 되어 주었고, 그의 뒤를 따라 많은 동포들이 각시탈을 쓰게 되었죠.

 

이와 같은 결말로써 가장 큰 혜택을 입게 된 사람은 바로 죽음을 맞이한 목단(진세연)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목단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센 척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남자들의 사랑도 혼자 다 차지하면서, 결국 제 힘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급박한 와중에도 공주처럼 남들의 보호만 받다가 끝난, 천하의 민폐 캐릭터로 남게 되었겠죠.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 드라마의 핵심인 남주인공 이강토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바침으로써, 여주인공 목단의 캐릭터는 삽시간에 제 빛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뭐.. 그래요... 유별난 능력은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제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더 바랄 게 뭐 있을까요? 목단이는 타고난 능력은 평범하지만 용기는 비범한, 그런 여자였던 거예요. 이로써 여주인공 목단의 캐릭터는 죽음 직전에서... 죽음으로써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2. 채홍주의 새로운 출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사실 제가 그 동안 가장 두려워했던 죽음은 바로 채홍주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이 너무 서글퍼서, 아무에게도 진실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이용만 당하다가, 부질없는 짝사랑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늘 그녀의 인생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아릿해 오는 슬픔을 미리 느끼곤 했습니다. 개인사로 본다면 비극도 너무 심한 비극이라, 어린 나이에 부모의 비명횡사를 본 것만도 안스러운데, 양아버지라는 작자는 손톱만치의 애정도 주질 않고 이용할 생각뿐이며,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믿을 건 권력뿐이라고, 양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요? 그래서 권력을 믿으면 뭐가 따라오는데요? 권력을 가지면 행복해지나요?

 

채홍주라는 인물의 캐릭터는 후반에 약간 변형된 것 같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아무 대가도 없이 자기 목숨을 구해 주었던 무사 이강토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사랑은, 오히려 후반에 가서는, 우에노 회장(전국환)의 명을 받고도 자기를 죽여 없애지 않고 살려준 기무라 슌지에게로 은근슬쩍 옮겨간 것처럼 보이거든요. 말하자면 이강토를 사랑하는 채홍주의 마음이란 그저 위기에서 자기를 구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일 뿐, 그보다 더 후에, 그보다 더 급박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다른 사람이 나타나자 그녀의 마음은 곧바로 그 쪽으로 옮겨간 것 같아요. 오죽하면 이강토가 습격하여 양아버지인 우에노 회장을 암살하고 도망치는데, 그 와중에 붙잡고, 한 번만 기무라 슌지를 봐달라고 애원할 정도겠습니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인지상정이죠. 뭐 누구라도 안 그럴까요? 아무 대가 없이 베푸는 호의란 상대방으로부터 그 이상의 감동과 호의를 얻어내게 마련입니다. 이강토가 소복입은 기생 채홍주를 구해준 이유는 같은 조선인이라서 그랬다고 이유를 댈 수도 있지만, 기무라 슌지가 그녀에게 베푼 호의는 아무 이유도 근거도 대가도 없는, 그저 황당할 만큼 순수한 거였으니까요. 오히려 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우에노 회장의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기가 위험에 처할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그녀를 보호해주려 했던 기무라 슌지의 마음은 정말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슌지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더하기로 하고, 일단은 채홍주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죠. 저는 언제나 그녀가 너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까봐 걱정했는데 (왠지 그러면 너무 가슴아플 것 같아서..;;) 비록 외롭겠지만 홀로 살아남아 새출발하는 모습을 보니 적잖이 기쁘고 행복했더랍니다. 세상이 너무 그녀에게만 가혹했던 것 같다는 생각... 조선 독립군들과 시대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인들과 한배를 탈 수도 없는... 이 넓은 세상에 홀로 내팽개쳐진 그녀의 입장이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쓰라렸어요.

 

 

하지만 채홍주의 엔딩은 결코 외롭지도 처참하지도 않았습니다. 호위무사 가츠야마(안형준)로부터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사랑 고백을 들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기무라 슌지로부터 인간적인 이해와 도움을 얻었습니다. 짝사랑하는 이강토에게서는 답을 얻지 못했으나, 이 정도면 아주 비참한 인생은 아닙니다. 비록 쌍방향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고,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는 자각은, 앞으로 그녀가 살아가는 데에도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갈 줄만 알았는데, 그녀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주어져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던 채홍주에게는 가장 걸맞는, 상큼한 엔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 기무라 슌지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

 

원래는 오목단과 채홍주, 두 여인의 삶을 비교하는 차원에서 끝내려 했던 포스팅이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찜찜하고, 따로이 포스팅을 하기에는 내용이 부족한 듯하여, 기무라 슌지에 관한 내용을 덧붙입니다. 솔직히 저는 좀 황당하더군요. 이강토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장면까지는 괜찮았죠. 기무라 타로(천호진)도, 우에노 회장(전국환)도 너무 순식간에 습격당해서 죽는 바람에, 각시탈 이강토의 능력이 갑자기 하늘의 기운을 받아 충천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예전에는 우에노 회장의 호위무사 긴페이(브루스 칸)에게 실력이 딸려서 몇 번이나 칼 맞고 쓰러지기도 했었는데, 도대체 이번에는 어찌 그렇게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는지, 내 눈썰미가 무디어서 제대로 못 본 건지..;; 

 

 

어쨌든 긴페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최고 권력자인 우에노 회장을 지키는 호위무사가 단 한 명 밖에 없는 건지, 긴페이가 쓰러지고 나니 아무도 없어 너무 손쉽게 우에노 회장을 처리한 후, 이강토는 텅텅 비어 있는 복도를 지나오는 길에 채홍주와 마주서서 긴 대화를 나누기까지 합니다. 머리가 비명횡사를 했는데, 뛰쳐나오는 팔다리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건 전쟁터에서 호위무사 한 명 없이 솔선수범 앞장서다가 결국 몸소 화살받이가 되어 드러누웠던 '주몽'의 금와왕(전광렬)을 능가하는 수준이군요.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뭐 대충 그렇다 치고...;;

 

생애 최후로 마주앉은 자리에서 두 친구의 대화는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서로 자기의 입장을 말했을 뿐, 지리멸렬한 대화였죠. 이강토가 "준비됐냐?" 하고 물은 것은 최후의 결투를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기무라 슌지가 "준비됐다!" 하고 대답한 것은 자기 인생의 최후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슌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강토를 기다린 이유는 그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기 위해서였음이 밝혀진 셈이죠... 기무라 슌지는 막판 2회 동안에 정말 뜻밖의 모습을 두 번이나 보여주었습니다. 당연히 신나서 죽일 줄 알았던 채홍주를 살려준 게 첫번째요, 아버지와 형을 눈앞에서 살해한 원수 이강토를 보면서 그가 아닌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던 것이 둘째입니다.

 

 

이제 생각하니 기무라 슌지도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너무 악행을 많이 저질러서 미화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원칙적으로 그가 원했던 건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별로 없어 보였고요... 그냥 자기 형이 죽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미쳐버린 동생일 뿐이었고, 그 형을 죽인 자가 제일 친한 친구라는 사실에 더욱 배신감을 느끼는, 철없고 이기적인 청소년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또 개인적인 원한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친구의 입장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던 사람.

 

하지만 그에게도 마지막 희망이 있었습니다. 뚜렷한 애국심도 없어 보이고, 그는 도대체 뭘 위해서 사는 것인지, 오직 형의 복수만을 위해 사는 것인지, 드라마 중후반까지 알 수 없던 인물인데요... 막판에는 아비의 복수까지 더해지긴 했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도대체 중심적인 생각을 알 수가 없었죠. 목표가 뚜렷한 각시탈 이강토와는 갈수록 비교되는 부분이었는데요... 그런데 자살하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알 것도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죽었다면... 나도 못 살아요. 나도 죽어요!" 라고 얼마 전에, 실제로 저의 절친한 사람이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무라 슌지는 막판까지도 목단에 대한 사랑과 집착을 버리지 못했죠. "그 아이만 내 곁에 있다면, 나는 다시 예전의 순수했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면서, 이미 몸과 마음 모두 이강토에게로 가 버린 목단에게 여전히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강토에게로 향하던 슌지의 총탄은 그 앞을 가로막은 목단의 몸에 박혔고, 결과적으로 슌지는 가장 사랑하던 사람, 자기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던 사람을 스스로 죽여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기무라 슌지의 감정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은, 도대체 어린 시절의 추억 외에는 그가 목단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강토와는 같은 조선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지만, 슌지와는 아무것도 없었죠. 하지만 남자의 첫사랑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엄청나게 강렬한 무언가가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슌지는 진심으로,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해서 목단을 사랑했고, 그녀를 자기 손으로 죽이는 순간,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버지와 형도 이미 죽은 후였으니까 더욱 그랬겠지요.

 

 

시대를 잘못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슌지같은 청년에게는 얼마든지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쟁은 지극히 선한 것이라고요? (우에노 회장의 대사 중에서) 아니요, 아무리 복잡한 역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순기능이 있다 해도 전쟁은 지극히 악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인간의 삶보다 앞선 가치로 손꼽힐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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