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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진' 김경탁의 마지막 편지... 영래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닥터 진

'닥터 진' 김경탁의 마지막 편지... 영래에게

빛무리~ 2012. 8. 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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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이면 나는 항상 그대에게 편지를 쓰곤 했소. 글 공부를 하다가도 무술 연습을 하다가도,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 가슴 벅찬 설렘에 혼자 얼굴을 붉히곤 했노라고, 나는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밤마다 적어 내려갔소. 혹시 그대가 읽는다면 못난 사내라 실망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나는 그대에게 하고 싶은 소소한 말들이 너무나 많았던 거요.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그대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곤 했소.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그대도 가끔은 내 생각을 하며 미소짓는 순간이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척이다가 치솟는 그리움에 몸이 달아오르면 방을 뛰쳐나와 찬바람을 쐬며 심호흡도 하고... 그렇게 밤새도록 엎치락 뒤치락 그대 모습만 떠올리다 부옇게 밝아오는 동쪽하늘을 맞이한 새벽이 몇 번이었던지, 이제 그대는 영원히 알 수 없겠군요.

 

 

하지만 혹시라도 그대 마음에 나의 존재가 무거운 짐으로 걸려 있다면, 이제 홀가분히 내려놓아도 좋소. 나는 한 번도 그대를 원망하거나 미워해 본 적이 없소. 그대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하여 내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내가 어떤 이유로도 그대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대의 선택 또한 그대의 운명이었을 뿐이니, 응답받지 못할 사랑을 나의 운명으로 정해준 하늘을 차라리 원망할지언정, 죄없는 그대를 미워할 까닭이 내게는 없었던 거요.

 

그대는 내가 법국(프랑스) 군사의 칼에 찔려 쓰러지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소. 어떻게든 나의 상처를 막아보려 애쓰던 그대의 희고 가녀린 두 손이 시뻘건 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간신히 마지막 숨결을 토해내듯 그대에게 말했소. "누가 뭐래도 낭자는 내 사람... 내 여인이오!" 그러나 사실은 전하지 못한 더 많은 말들이 내 가슴 속에 담겨 있었소. 내 손을 꼭 붙잡은 그대 손의 체온 때문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나를 위해 흘리는 그대의 눈물이 얼마나 기쁘고도 가슴 저린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나는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소. 

 

 

그 다음 순간 성벽이 폭발하며 날아온 파편이 그대의 몸에 박혔고, 깊은 상처를 입은 그대는 마치 나를 얼싸안듯이 내 몸 위로 쓰러졌소. 진의원이 곁에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대는 나의 길동무가 되어 손 잡고 삼도천(三途川 :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내)을 건넜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죽은 나와 함께 하기보다 내가 더욱 바랐던 것은 그대가 이 세상에 살아남아 행복해지는 거였소.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의술도 마음껏 펼치고, 진의원을 사랑한다면 그와 맺어져 날마다 웃으며 살 수 있길 바랐소. 그런데 치료해 주려는 진의원에게 그대가 말했소. "나도... 나으리의 곁으로 가리다!"

 

물론 알고 있소. 그대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진의원의 앞일을 염려해서였음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기뻤소. 그대를 내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마음은 다른 곳에 있어도 상관없다고, 예전에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오? 이제는 그 때처럼 어리석지 않은데도, 그대가 진정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내 곁으로 오겠다는 그 한 마디에 주책맞게 설레고 있으니, 이 내 못난 사랑은 죽어서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오.

 

 

그대와 오라비 영휘가 있어, 나 김경탁의 최후는 결코 외롭지 않았소. 영휘가 전쟁의 폐허를 뚫고 달려와 싸늘한 내 몸을 안고 절규할 때, 나의 옷자락에는 그대가 흘린 피와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이었소. "경탁이, 여기서 뭐하는 겐가? ... 나와 함께 돌아가세. 나와 함께 돌아가세, 이 친구야!" 창자가 끊어질 듯 고통스럽게 울어대는 영휘를 보며, 나는 그의 진심을 알 수가 있었소. 비록 우리 가문의 원수인 흥선군을 따르기로 선택했어도 그의 마음은 계속 나를 친구로 여겼고, 삶의 모든 순간에 나와 함께 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거요.

 

떠난 줄 알았던 영휘는 그렇게 내 곁에 친구로 남아 주었고, 응답받지 못했어도 내 사랑이 멈추지 않는 한 그대는 내 여인이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소. 그러니 혹시 내게 한 조각의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오늘 밤 그대의 방을 밝히는 한 자루 촛불에 남김없이 태워 버려야 하오. 그대가 없었다면 평생 사랑을 모른 채 쓸쓸히 죽어갔을 나의 운명이 얼마나 참담했겠소? 밤새워 써내려갔던 그 수많은 편지들처럼 역시 부치지 못할 이 마지막 편지에서, 그래도 내가 꼭 전하고 싶은 단 한 마디는 그저 ... 참 많이 고맙다는 인사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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