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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최정우에게 주고 싶던 강동윤의 대사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적자

'추적자' 최정우에게 주고 싶던 강동윤의 대사

빛무리~ 2012. 7. 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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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우(류승수) 검사는 참으로 듬직하고 매력적이며 희망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서지원(고준희)와 더불어 가진 자이면서도 못 가진 자의 편에서 함께 싸워주는 젊은이죠.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와 검찰청에 선후배 동문이 수두룩하고, 그의 부친은 한 때 대법관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쟁쟁한 집안이니, 서지원에 필적할만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그만하면 평범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상위 1%의 엘리트 인생을 영위해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최정우는 자기 아버지의 대수롭지 않은 비리를 적발하여 대법관 후보의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정작 그의 아버지 대신 대법관이 된 것은 장병호(전국환) 같은 썩어빠진 인물이었습니다. 혈육의 정도 무시하고 엄격한 법을 적용한 것은 조금이나마 깨끗한 세상을 만들려는 열혈청년의 정의감이었지만, 그 순진한 삽질의 결과는 겨 묻은 개를 밀어내고 똥 묻은 개를 그 자리에 앉힌 것뿐이었죠. 그 때 받은 충격으로 최정우의 부친은 병들어 폐인이 되었다던가, 아니면 죽었다던가? 하여튼 자식으로서 아비에게 그토록 못할 짓을 하면서까지 정의를 부르짖었건만, 결과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했던 최악의 경험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경험을 했으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이 더러운 사회에 대한 혐오감 등으로 가득차서 모든 의욕을 잃고, 법과 정의를 애써 지키려고 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며 자포자기 내팽개쳐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정우는 그런 풍파를 겪고서도 초심을 잃지 않았군요. 의욕을 잃기는 커녕 오히려 분기탱천하여, 어떻게든 자기가 선택한 삶의 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상처입은 맹수가 독을 품고 이빨을 드러낸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올곧은 만큼이나 순진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가끔씩 좀 불안하지만, 그래도 믿음직한 까닭은 이런 과거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고난을 겪어 본 적 없는 온실 속 화초는 아니니까요.  

 

최정우의 순진한 면모는 기자회견장에서 백홍석(손현주)과 통화할 때도 드러났습니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멀쩡하게 펄펄 뛰어다니는 조남숙(박효주) 형사를 일부러 차로 치어 중상을 입혀 놓고는 위태로워진 그 목숨을 담보로 거래를 하자는 놈들인데, 백홍석으로부터 그 상황을 전해듣고도 최정우는 "그놈들도 사람을 죽게 놔두진 않을 겁니다!" 라고 말했거든요. 물론 그 기자회견이 너무나 중요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그랬겠지만, 설마 사람을 죽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말에 진심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그건 자기가 싸우고 있는 상대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에 벌써부터 상대를 파악하고 있던 백홍석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합니다. "그놈들은 뭐든지 합니다. 나나 조형사같은 사람은... 벌레라고 생각하니까요."

 

 

결국 기자회견은 취소되고, 허위 사실을 근거로 대통령 후보 강동윤(김상중)을 무고한 셈이 되어버린 최정우 검사는 피의자 신분이 되어 취조를 받게 되었네요. 취조를 담당한 검사는 언제나 최정우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하던 동기 박민찬(송영규) 검사입니다. 이 박검사 또한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이죠. 배우가 마치 연극무대에서처럼 과장된 연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최정우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인물로 느껴지니 말입니다. 너무 위악을 떨어서 얄미워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박검사도 이 사회의 약자이고 피해자입니다. 

 

한 때는 박민찬도 최정우 못지 않은 열혈 청년이었겠지요. 원칙을 준수하고 정의를 수호하면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지금 그의 모습도 최정우와 비슷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좋은 집안과 최고의 학벌을 지닌 엘리트 최정우와 달리, 서민 출신에 지방대학을 나와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박민찬은 한 걸음만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몇 배의 힘이 더 들었습니다. 원칙 준수가 안 되는 것은 꼭대기뿐만 아니라 바닥에서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렇다 보니 박민찬은 살기 위해서 일찌감치 딸랑딸랑을 익힐 수밖에 없었으며, 과도하게 위악을 떠는 이유는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입니다.

 

 

최정우를 취조한답시고 들어온 박민찬이 깐죽거리며 늘어놓는 말들도 모두 딱할 정도로 구차스런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검사를 받고 일하니까 검사야. 부장님 차장님 청장님 그분들 검사받고, 해라 그러면 하고, 덮으라 그러면 덮고... 진실? 정의? ㅋㅋ 주옥같은 말씀들이지. 그래서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한 게 있냐? 없지? 그럼 너하고 나하고 뭐가 다르냐? 너는 입으로만 떠들고 노력하면서 하나도 못하고, 나는 안 떠들고 노력 안하면서 하나도 못하고, 어라? 결과가 똑같네! ㅋㅋ... 근데 왜 나를 잡놈 보듯이 보실까? 우리 고고하신 최정우 검사님아!" 이쯤 되면 박검사는 차라리 굴욕을 자초한 셈이군요. 노력했지만 실패한 것과 노력 안해서 못한 것과는 절대 똑같지 않다는 것을 본인도 모르지 않을텐데, 최정우 앞에서 초라해지기 싫은 나머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충수를 둔 것입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최정우는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박민찬의 가슴에 남은 최후의 자존심을 잘근잘근 짓밟아 줍니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해야지. 너 같은 놈하고 똑같아지기 싫으니까. 어이~ 우리 인생 오늘로 끝나는 거 아니다. 10년 뒤도 있고 20년 뒤도 있어. 그 때도 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거고, 넌 그 때도 위에서 검사받고 일하겠지. 안다, 너같은 놈... 내가 이기는 게 싫겠지. 내가 져야 네 더러운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가 될테니까. 어이~ 넌 그렇게 살아라. 난 이렇게 살란다!" 양아치를 부를 때면 이름 대신 "어이~" 한다던 최정우입니다. 이제 동지가 되어 불의와 싸우고 있는 전과7범 용식이한테는 이름을 불러주면서, 스스로 권력의 발바닥을 핥고 있는 동기검사 박민찬에게는 "어이~" 하는군요.

 

 

이렇게 꼿꼿한 최정우가 저는 한편 대견하고 믿음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아직은 너무 때묻지 않고 세상을 모르는 듯한 느낌 때문에 불안합니다. 상처받은 과거가 있긴 했지만 아직은 뜨거운 맛을 덜 본 듯한, 앞으로 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되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죠. 박민찬에게 잠시 취조를 받던 최정우는 백홍석과 신혜라(장신영)의 거래로 즉시 풀려났습니다. 백홍석이 PK준의 핸드폰을 돌려주는 대가의 첫번째로 최검사의 석방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화 한 통화에 잡혔다가 전화 한 통화에 풀려난 최정우는 새삼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서지원 앞에서 휘청거리기 시작하는군요.

 

"지난 몇 달, 이 사건에 매달렸다. 백홍석 그 사람은 탈옥까지 했고 조형사는 사고까지 당했어. 황반장님, 보름 넘게 집에 못 들어갔어. 그렇게 준비했다... 오늘 기자회견! 그런데 네 형부 말 한 마디에 전부 무너졌어... 재벌집 여기자! 기자놀이 그만 하고 집에 가라... 그 사람들... 날 믿고 따라왔는데, 법으로 해보겠다고 날 믿으라고 했는데, 오늘 내가 너무 초라하다... 그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박검사 앞에서는 호기롭게 다시 시작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더니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순진하기로 따지면 최정우보다 몇 배는 더한 서지원인데, 오히려 그녀를 볼 때는 불안하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좀 모순된 말이지만, 서지원의 등 뒤에 있는 현존 최고의 세력 때문입니다. 최정우는 과거에야 떵떵거리는 법관 집안의 배경이 있었겠지만, 자기 손으로 그 배경을 허물어뜨린 이후에는 별다른 비빌 언덕도 없는 현실이거든요. 그러니 보호막도 없이 된통 한 방을 얻어맞게 되면 재기불능의 상처를 입고 사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회장(박근형)의 막내딸인 서지원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녀도 된통 한 방을 얻어맞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군요.

 

어쨌든 최정우보다 훨씬 더 순진하면서도 더 믿음직해 보이는 서지원이 휘청이는 최정우를 붙잡아 줍니다. "어리광 부리지 말아요! ... 난 그쪽,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 어른스러워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보니 애구나, 그쪽? ... 언제나 그랬잖아요? 자, 다시 시작합시다!" 그녀의 따끔한 일침에 넋놓고 있던 최정우가 정신을 차립니다. "만약에 법으로 해서도 안 되면 그 땐, 검사님이 저를 도와주세요!" 선거 당일날에도 유효하다고 백홍석이 말하던, 법을 벗어난 최후의 일격이 비로소 생각난 거죠. 끝까지 그를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과 더불어서 말입니다.

 

 

신혜라는 백홍석에게서 찾아 온 핸드폰을 강동윤에게 건네며, 지난 일들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후보님도 저도, 이 핸드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자 강동윤은 "재밌군...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우린 서로 다른 걸 느꼈어!" 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인즉, 자신의 어떤 행위에도 한 점의 후회가 없으며, 발생했던 모든 일은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뜻이었습니다. "혜라야... 세상의 모든 일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싸우고 부딪히고 또 싸우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단 한 번도 비단길은 없었어!"

 

과연 최정우는 변치 않고 남을 수 있을까요? 저는 강동윤의 저 대사를, 수십 년 후의 최정우에게 꼭 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싸우고 부딪히고 또 싸우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만약 그 때에도 최정우의 멘탈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면, 지금과 똑같은 마음으로 저 대사를 읊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도 조금이나마 더 살만한 곳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 때문입니다. 강동윤처럼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하는 자뿐만이 아니라, 죽어가는 정의를 위해서 마지막 힘을 보태려는 최정우 같은 사람도, 세상 모든 일을 겪으며 점점 강해져 갈 수 있다는 한 조각 믿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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