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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2' 국카스텐의 거울, 그 차가운 얼음장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나가수2' 국카스텐의 거울, 그 차가운 얼음장

빛무리~ 2012. 6.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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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가수들 모두에게 괜시리 미안해질 만큼 '나는 가수다2'에 저는 아직도 매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주 '불후의 명곡2'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에 비해 '나가수2'에는 아주 무덤덤한 편이에요. 시즌1 때의 흥분과 감동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고 있으며, 가수들의 변신에 대한 궁금증도 왠지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중의 시선이 이토록 차가운 원인을 지나치게 올드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있다고 보더군요.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맞는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나가수2'의 출연 가수들은 '불명2'보다 연령이 높은 데다가, 탈락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가 존재하는 한 분위기도 무거울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 지루함의 원인을 오직 그것뿐이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

 

'6월의 가수전 - B조 예선'을 시청한 후, 저는 풀리지 않는 의혹에 잠겼습니다. 경연에 참가한 가수들 중 가장 빠르고 경쾌한 무대를 선보인 사람은 이은미와 김건모였는데, 그들의 훌륭한 가창력과 무대매너를 감상하면서도 제 마음속엔 별다른 흥이 솟구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즌1에서 김범수의 '님과 함께' 라든가 YB의 '대쉬'를 들었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때는 무대를 감상하는 내내 벅차게 즐거워서 얼굴 근육이 아프도록 웃고 있었으며 온 몸은 짜릿한 쾌감에 휩싸였었죠. 그런데 이번엔 그저 속으로 "아, 노래 정말 잘하는구나. 참 세련되고 매끈하게 준비된 프로페셔널한 무대로구나" 이런 생각만을 하고 있었을 뿐, 저절로 흥에 겨워 웃음을 띤다든가 어깨춤을 추게 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왜 그런지를 알 수가 없었어요.

 

 

국카스텐과 더불어 6월에 새로 합류한 한영애가 드디어 등장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누구 없소'라는 노래 제목을 들으면 누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되지요. 그녀의 음악세계는 독특한 목소리 만큼이나 신비롭고 격조높을 듯하여 저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영애의 첫 무대를 감상한 느낌은, 실망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적잖이 허전하게 느껴지더군요. 제 생각엔 '이별의 종착역'이라는 선곡부터 판단 착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청중과 시청자의 연령대를 너무 높게 잡은데다가 취향도 파악 못한 듯했어요.

 

또한 오래된 노래일수록 편곡 및 리메이크를 할 때는 가능한 한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해야 그 신선함에 매혹되기 쉬운 법인데, 한영애의 해석은 오히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샹송가수 에디뜨 삐아프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와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살짝 황홀감에 젖기는 했지만, 뭔가 소망이 채워지지 않은 듯한 허전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마음을 흔드는 무대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채, 6월의 두번째 예선 경연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축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정된 룰에 따라, 첫번째 예선의 우승팀이었던 국카스텐의 특별공연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한 잔의 추억' 만으로는 그러잖아도 목이 말랐는데, 정말 반가운 일이었죠. 국카스텐의 음악은 마치 깊은 산의 바위 틈에서 샘솟는 약수물 같은 느낌이거든요. 송곳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있으니, 다량의 탄산이 함유된 톡 쏘는 약수물이라고 표현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보컬 및 기타를 맡고 있는 하현우는 서른 두 살이나 되었음에도 마치 이십대 초반의 어린 청년처럼 해사하고 여리한 외모를 지녔습니다. 말투도 겸손하고 조근조근하니 얼핏보면 얌전한 범생이 청소년쯤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법한데, 무대에 올라 연주가 시작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합니다. 취한 듯, 미친 듯, 신들린 듯... 앙칼진 고음이 난무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정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리듬을 타는 그의 춤사위를 보고 있노라면 그래, 가끔은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만큼 무대 위의 국카스텐은 그들 스스로가 행복해 보였거든요.

 

 

국카스텐이 특별공연에서 부른 노래는 자신들의 앨범에 수록된 '거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가사가 심상치 않음에 등골이 오싹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벌거벗은 너의 시선은~ 벌거벗은 내 몸을 보고~ 차갑게 너는 나를 안고~ 야속하게도 키스했네~" 어잉? 자극적인 단어들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극적인 단어들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에로티시즘이 아닌, 오히려 차가운 얼음장 같은 감성을 노래하고 있음이 놀라웠던 것입니다. 개인적 느낌으로는 개화기 시인 이상의 작품과 약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칠은 손을 내밀며~ 같이 하자고 말을 하는 넌~ 불안한 몸짓으로 난~ 거울을 보며 나를 찾고 있네~ 눈을 가린 채 춤을 추네~ 귀를 막은 채 춤을 추네~" 이 혼란스런 가사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아마도 여러 갈래의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겠지요. 시와 노래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각자 다른 형태로 재탄생하는 예술이니까요. 한 순간 몇 개의 단어들이 제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공포, 염세(厭世), 절망... 그리고 열정.

 

 

더럽혀지지 않은 젊은이의 영혼으로 바라볼 때, 이 세상은 추악하고 두려운 곳이지요. 노력하는 만큼 항상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꿈을 이룰 날은 아득히 멀기만 합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는 행동은 더러운 세상에 대한 증오와 절망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덥석 잡기엔 두려움이 너무 크지요. 게다가 그 손은 거칠기 짝이 없으니, 함께 한다면 틀림없이 쉽지 않은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에 떨면서도 주인공은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눈을 가린 채, 귀를 막은 채, 계속해서 춤을 추는 이 동작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결코 식지 않는 열정과 꺾이지 않는 희망을 의미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해석은 대충 여기까지.

 

'거울'의 가사 속에는 국카스텐이라는 록 그룹의 정체성이 그대로 집약되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곱씹을수록 작사 실력이 대단한 수준급이라 감탄을 금할 수 없는데, 놀랍게도 이 또한 보컬 하현우의 솜씨라는군요. 뾰족한 고음 만큼이나 날카롭게 사람의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앙칼진 바람... '거울'이라는 노래의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저는 '얼음장'이라 하겠습니다. 뼛속까지 시리도록 차갑디 차가운 얼음장... 현재 한여름의 오후처럼 나른해져 버린 '나가수2'에는 그런 얼음장 한 조각이 꼭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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