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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공주병 엄마와 남성 패널들의 큰 착각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안녕하세요' 공주병 엄마와 남성 패널들의 큰 착각

빛무리~ 2012. 6. 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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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도 그런 경우가 있겠지만, 저는 가끔씩 어떤 '여자'의 행동을 보며 같은 여자라는 게 창피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요즘같은 시대에 '남자니까' 어떻고 '여자니까' 어떻고 하면서, 매사에 여자임을 또는 남자임을 티낸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안녕하세요'에 출연하신 공주병 엄마는 같은 여자들을 무척이나 창피하게 만드시는 분이었습니다.

 

고민의뢰자는 현재 5살, 2살의 남매를 키우고 있는 둘째딸이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공주병 엄마의 시중을 드는 일이 어찌나 까다로운지,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도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자 형제들 사이의 고명딸로 외할아버지의 귀염을 듬뿍 받으며 자라신 엄마는 지금도 항상 "어머, 나 이런 거 안해봤는데!", "어머,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기, 누가 이것 좀 해주세요~!"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사신다는군요.

 

 

가족들끼리 외식이라도 나갔을 때면, 두 아이를 챙기느라 정신없는 딸에게 "얘, 고기 타겠다. 얼른 이것 좀 뒤집어라!" 하신답니다. 다른 친정엄마들처럼 어린 손주들을 봐주시기는 커녕 이런저런 잔심부름만 시켜대니, 딸은 친정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집에서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니 절대로 친정에서 자고 오는 법은 없다지요..;; 게다가 둘째를 임신중에 큰아이를 데리고 엄마와 함께 쇼핑을 한 적도 있었는데, 엄마가 짐이 무겁다고 주위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하도 엄살을 부리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임신한 몸으로 아이를 챙기고 주렁주렁 쇼핑백까지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에는 모두가 경악했습니다.

 

두살배기 손녀를 귀여워할 때도 행여 아기의 침이 옷에 묻을세라, 포근히 안아주지는 못하고 멀찌감치 떼어놓은 채 "아이고, 우리 아기~" 말로만 예뻐하시는 할머니랍니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까지는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습니다. "난 내 것도 더러워서 못 해!" 하신다는군요..;; 도대체 두 딸은 어떻게 키우셨던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사셨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했는데, 끝내 그 이야기는 나오질 않더군요.

 

 

게다가 엄마는 현재도 직장을 다니고 계신다는데, 그 성품에 어떻게 직장생활이 가능한 것인지도 저는 몹시 궁금했습니다. 직장의 모든 동료들이 그분을 만족시킬만큼 편안하게 떠받들어 주고 있는 걸까요? 직장을 쉬는 휴일날, 딸을 위해서 손주를 봐줄 수도 있지 않느냐고 MC 이영자가 묻자, 공주병 엄마는 무슨 가당찮은 소리를 하느냐는 듯 "어머~" 하고 우아하게 콧방귀를 뀌시더군요. 그렇죠. 그거야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엄마도 엄마의 생활이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 엄마는 딸네가 김장을 할 때면 와서 잠깐 거들어 주고 김치는 많이 가져가고, 딸의 친구가 시골에서 음식이라도 보내오면 거침없이 절반을 뚝 잘라 가져가 버리신답니다. 이건 보통 딸들이 하는 행동인데 완전 바뀐 셈이죠..;; 언니보다 먼저 결혼한 둘째딸이 주로 육체노동을 담당한다면, 현재 미혼인 큰딸은 금전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엄마의 시중을 들고 있더군요.

 

 

툭하면 "누구네 엄마는 딸이 보내줘서 여행을 다녀왔다더라~", "누구네 엄마는 딸이 차를 바꿔 줬다더라~" 그러시는 바람에 큰딸은 월급을 모아서 여행도 보내드렸고, 지금은 엄마의 차를 바꿔드리려고 적금까지 들고 있답니다. 그런 경우 보통 엄마라면 큰딸에게 빨리 돈 모아서 시집가라고 하실텐데, 정말 특이하신 공주병 엄마였습니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다!" 엄마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둘째딸은 엄마의 사상을 요약 정리했습니다.

 

앞으로도 평생 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MC 신동엽이 묻자, 공주병 엄마는 거침없이 3가지를 대답하셨는데 "무거운 짐 들어주기", "징그러운 벌레 처리해 주기", "반복 동작이 많아서 힘든 집안 일 대신 해주기" 였습니다. 참내... 본인만 여자이고 딸들은 여자가 아닌가요? 같은 여자면서 왜 본인만 공주이고 딸들은 하녀라고 생각하는지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만약 아들들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아들들에겐 훨씬 더 심하게 치대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MC 정찬우가 나서서 문제의 핵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버린 거였죠. 자기는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고 사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제발 어머니도 본인의 삶을 찾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정찬우가 보기에는 이 공주병 어머니의 삶의 자세가 나쁘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신동엽이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 말했고, 게스트로 참여했던 울랄라세션 중에도 무려 3명의 멤버가 그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특히 울랄라의 막내 박광선은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보통 여자들은 결혼하면 아내, 엄마가 되고 여자로서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어머니는 지금도 여자로서 저렇게 사시는 모습이 참 멋지세요!" ... 허걱 ㅜㅜ

 

도대체 '여자'가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렇게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매사에 엄살이나 피워대면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그런 존재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 공주병 엄마의 기상천외한 행동을 전해 들으면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만하면 아주 정상적이고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물론 엄마에게도 자신의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처럼 직장을 쉬는 날, 손주를 봐주는 것이 친정엄마의 의무는 아니죠. 엄마도 휴일이면 친구나 동료들과 어울려 등산을 다니거나 놀러다닐 자유가 있습니다. 엄마라고 무조건 희생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공주병 엄마의 사고방식은 그러한 종류의 세련된 쿨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일방적으로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고 의지하면서 무슨 서로의 생활을 존중할 수가 있다는 겁니까?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은, 가능한 한 자기 일을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고 타인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독립적 마음가짐입니다. 하지만 저 공주병 엄마처럼 벌레를 잡거나 유리창을 닦는 일까지도 "난 못 해!" 하는 마음가짐으로는 평생 불가능하겠죠. 전기 코드를 끼우거나 뽑고, 불판의 고기를 뒤집고, 백화점에서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등, 그 많고도 자잘한 일들이 이 공주병 엄마에게는 모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요. 이거야 원...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

 

 

물론 성격이 어떻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서 곁에 계시다는 사실이고, 그것만으로도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행복한 일이긴 하지요. "고민이 아니다"를 선택한 패널들의 마음도 대충 그런 의미에서였을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참 멋지시다" 라고 말하던 박광선의 황당한 발언이, 저로 하여금 이런 글까지 쓰게 만들었군요.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라는 사고방식 자체는 전혀 나쁠 게 없지만, 여자가 뭔지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죠.

 

최근 종영한 드라마 '더킹 투하츠'를 보며 여주인공 김항아(하지원)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은 시청자가 있을까요? 그런데 정말 멋있는 여자는 씩씩한 여전사 김항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질로 잡혀있던 중국에서 탈출할 때, 대비 방영선(윤여정)은 자기를 챙겨주려는 며느리 김항아의 손을 뿌리치며 단호히 말했었죠. "북한 여자만 강한 줄 아니? 남한 여자도 강해!" 그러고는 차가운 물살이 거세게 흐르는 넓은 개울을 혼자 힘으로 헤엄쳐 건너갔습니다. 연약한 줄만 알았던 시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던 항아... 이것은 '더킹 투하츠'에서 제가 뽑았던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툭하면 약한 척하고, 지나치게 깔끔을 떨고,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조차 당연한 듯 민폐를 끼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니까 그렇다고, 매사에 여자임을 내세우는 그런 여자들을 보면, 저는 같은 여자라는 사실이 몹시 창피해집니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공주병 엄마와, 그런 태도에 어영부영 동의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답답하더군요. 어째서 그런 게 여자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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