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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남자' 심리극+공포드라마, M이 되어가는 최수미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적도의 남자

'적도의 남자' 심리극+공포드라마, M이 되어가는 최수미

빛무리~ 2012. 5. 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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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나중에 실망스런 스토리 전개를 보이거나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어 가더라도 상관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한 충성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꽤나 많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게 좀처럼 안 됩니다. 초반에 홀딱 반해서 끝까지 사랑하리라 마음먹었던 드라마도 점점 변질되어가는 것을 보면 쉽게 마음이 식어버리더군요. '드라마 = 인간' 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실망스런 모습을 발견했다 하여 곧바로 차갑게 돌아서는 셈이니 정말 못됐다고 할만 하겠죠.

 

하지만 드라마는 사람이 아니니까, 좀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드라마에 대해서도 변함없이 꿋꿋한 사랑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면, 빛무리가 이제껏 팬의 탈을 쓰고 행세해 왔을 뿐 사실은 '적도의 남자' 안티였다고 오해하기도 충분하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고 원래 제 스타일이 이렇습니다..;; 지난 번 '해를 품은 달' 같은 경우는 초반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돈 내고 원작소설까지 구입해 읽을 만큼의 열의를 보였지만, 한가인의 등장 이후부터 급격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다가 결국은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었죠. 물론 '적도남'의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은 애써 "재밌다, 재밌다~" 되뇌이면서 보아도, 다 보고 나서 제 마음에 남는 것은 "재미없다~"는 씁쓸한 감상뿐입니다. 어떻게든 끝까지 굳건한 사랑을 유지하고 싶었건만, 이런 식이라면 이번에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적도의 남자'는 분명히 '복수극'을 표방하고 시작한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일종의 심리극(일명 사이코드라마,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자들의 인격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행하는 극 형식)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김선우(엄태웅)가 이장일(이준혁)을 응징하기 위해 선택한 복수의 방식 때문입니다. 문태주(정호빈)의 대사에서 암시되었듯이, 이장일은 처음부터 '썩은 나무'로 규정되었고 김선우는 살랑살랑 불어와서 그 나무를 쓰러뜨리는 '바람'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장일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같고, 김선우는 그에게 복수하려는 원수라기보다 그 환자의 곪은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해 주려는 의사처럼 느껴집니다.

 

 

누가 슬쩍 한 번 찔러보기만 해도 움찔움찔 요동할 만큼의 유리멘탈인 주제에, 그렇게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이제껏 가면을 쓰고 살아온 이장일은 누가 봐도 '썩은 나무'가 맞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원칙적이며 정정당당한 김선우의 복수의 방식은... 생전 처음보는 것이긴 한데 왜 이렇게 임팩트가 없을까요? 제가 보기엔 말이죠. 현재 김선우의 가슴속에는 '복수심'이나 '증오심'이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그는 다만 '진실'을 밝히고 싶어하는 정의의 사도일 뿐이에요. 양아버지 김경필을 도대체 누가 죽였는지 온 천하에 명백히 밝혀내고, 그 죄에 대해서 법적인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 김선우가 생각하는 복수는 대략 이쯤인 듯한데, 그게 '정의실현'이지 무슨 '복수'인가요?

 

'몽테 크리스토 백작'을 위시하여 대부분 복수극의 주인공들은, 기나긴 준비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복수에 들어가면 상대의 악랄함에 필적할만한 잔혹함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받았던 만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하게 복수하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또는 독자)들은 통쾌함의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기묘한 슬픔을 느끼곤 했지요. 이제껏 주인공의 분노와 증오심을 공유하며 그를 응원해 왔지만, 잘못을 저지른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죄없는 사람들까지 망가뜨린 복수극의 처참한 결과를 보게 되면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밀려드는 겁니다. 게다가 자기 목표를 이루어 속시원한 복수에 성공한 후에도 주인공은 별로 행복하지 않군요. 복수극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제껏 "죽여, 죽여버려~!" 를 외치면서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아, 역시 복수는 올바른 일이 아니야!" 라는 역설적 교훈입니다. 분노와 증오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복수극의 카타르시스는 더욱 커지게 되며, 교훈의 효과도 극대화되겠죠. 그런데 김선우라는 인물은 너무도 착하디 착한 바른생활 사나이여서, 복수극의 주인공으로는 도통 어울리질 않습니다. 보통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접근하여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기존 복수극의 주인공들과 달리, 김선우는 처음부터 자기 실체를 훤히 드러내며 접근했고, 지금도 자신의 모든 수가 다 보이게 함으로써 점차로 이장일의 목을 조여가고 있네요.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그런데 이게 정말 따분합니다. 허구헌날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이장일의 눈빛을 보는 것도 이젠 지겨워요..;;

 

 

김선우의 태도를 보면 이장일의 원수가 아니라 그를 치유하려는 의사처럼 느껴진다고 아까도 말했었죠? 오직 진실을 밝히겠다는 마음뿐 증오심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김선우의 절대적 선량함에, 자기 뒤통수를 내려치고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자 했던 이장일은 여전히 잃고 싶지 않은 친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내 친굽니까?" 하고 쿤(조희봉)에게 되묻던 그 차가운 말투와 표정을 달리 해석한다면, 오히려 친구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아버지 김경필에게 죄 지은 자들은 용서할 수 없지만, 자기에게 죄 지은 이장일만은 피해 당사자의 권리로써 용서하고 싶어하는 듯한 모습이에요. 올가미를 좁혀가며 이장일의 목을 조이는 모습조차도 "장일아, 어서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렇게만 하면 내가 기꺼이 용서할테니, 우리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올바르고, 너무나 바람직한... 이렇게까지 도덕적인 복수극은 난생 처음입니다. 마치 대놓고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올바른 복수는 이런 것이다" 라고 가르쳐 주는 듯한 느낌도 드는군요.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문제는 재미가 없습니다. 정신과에서 진행되는 사이코드라마를 몇 회째나 반복해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길고도 지루하게 반복되는 그 치료의 과정을 견뎌내는 것은 환자와 의사의 몫일 뿐, 구경꾼들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김선우와 이장일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의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지만, 구경꾼의 한 사람으로서 저의 긴장감은 이미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복수극에서처럼 저절로 밀려드는 역설적 감동과 교훈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냥 곧이곧대로, 작가가 떠 먹여주는 대로 "저렇게 복수하니까 참 좋구나. 죄없는 사람은 다치지 않고 죄지은 사람도 뉘우쳐 새 삶을 살게 되는구나. 그래서 모두모두 행복해지는구나. 그러니까 나도 김선우처럼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뭐 이런 정도의 교과서적 메시지는 얻을 수 있겠죠..;;

 

 

더구나 요즘 가장 웃기는 것은 18년 전의 공포드라마 'M'을 연상시키는 최수미(임정은)의 모습입니다. "장일아... 나 그 때... 거기에 있었어!" 라는 섬뜩한(?) 대사에서부터 시작된 최수미의 M 놀이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네요. 생생한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이장일에 대한 집착적 사랑 때문에 무려 15년 동안을 함구하고 지내왔을 뿐 아니라, 김선우의 복수가 시작된 지금도 가증스런 거짓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검사 앞에서 뻔뻔하게 위증을 해대는 최수미는 정말 공포스런 여자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이코 성향이 다분한 이 여자의 존재감을 이토록 부각시켜서 뭘 어쩌자는 걸까요? 일부러 눈화장을 그렇게 하고 표정도 그렇게 짓는 건지, 가끔 임정은의 눈매와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 M으로 분장했던 18년 전의 심은하와 너무 똑같아서 헛웃음이 터지곤 합니다.

 

기존 복수극의 틀을 깨고 참신한 시도를 했다고 표현해 주고 싶지만, 제가 보기에 이건 더 이상 복수극이 아니라 '심리극(사이코 의학 드라마) + 공포드라마 (M 류의 그런 것)' 입니다. 이 모호한 정체성과 끝간 데 없는 지루함... 김선우와 이장일의 심리전에 한창 맛들여 계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에게 있어 '적도의 남자'는 별로 결말이 궁금하지도 않은 드라마가 되어 버렸네요.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한지원(이보영) 때문입니다. 한지원이라는 여자의 캐릭터가 너무도 매력적이니, 김선우가 그녀와 더불어 행복해지는 모습 정도는 보고 싶군요. 한지원 캐릭터에 대해서는 훗날 기회가 있다면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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