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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남자' 엄태웅의 맹인 연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적도의 남자

'적도의 남자' 엄태웅의 맹인 연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

빛무리~ 2012. 4.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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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엄태웅)가 시력을 회복한 후의 모습으로 이장일(이준혁) 앞에 나타나 본격적인 복수의 서막을 알렸으니, 앞으로는 엄태웅의 동공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듯합니다. 이장일과 이용배를 불러내서 마치 "내가 돌아왔다!"고 선포라도 하듯이 보여주었던 섬뜩한 그 연기가 마지막이었나봐요. 스토리의 흐름이나 설정으로 봤을 때는 어째서 그와 같은 만남이 필요했는지 썩 납득이 안 가는데, 아마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그 소름돋는 연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태웅의 맹인 연기는 단지 동공뿐만 아니라 온 몸과 표정에서부터 생생히 전해져 오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습니다. 오래 전, 안재욱의 데뷔작이었던 '눈 먼 새의 노래' 이후 더 이상의 맹인 연기를 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천부적인 재능과 오랜 경력이 합쳐진 후에 발산하는 엄태웅의 포스는 신인 시절의 안재욱을 압도하기에 충분했군요. (만약 안재욱이 지금 다시 맹인 연기를 한다면 어떤 표현이 나올지가 새삼스레 궁금해진다는..^^) 눈동자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 터에 몸짓과 표정, 대사까지 자연스럽고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는 매 회, 매 순간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라마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변화된 김선우의 모습에 적응하며 과거의 모습은 추억으로 남겨야 하겠지만, 그냥 흘려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운지라, 그의 맹인 연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어떤 시각장애인의 딸이 트위터를 통해 엄태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혼신을 불태우는 한 배우의 연기가 과연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밀려드는 감동에 저는 살짝 전율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관련기사 : 엄태웅의 동공 연기, 시각장애인 가족도 울렸다]

 

"시각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딸로서 엄태웅님이 진지하게 임해 주시는 연기가 너무 감사하네요. 장애나 병을 아름답게만 연기하는 다른 배우분들과 달리 있는 그대로 사실처럼 연기해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중략... 엄태웅님의 연기로 대중들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줄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고,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우리의 무신경함이 장애인들에겐 큰 벽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아주 가까운 곳에 시각 장애인이 있는 저조차 아버지를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시각 장애인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막연히 '실감난다', '리얼하다', '그럴 듯하다' 라고 생각했을 뿐, 엄태웅의 연기가 실제 맹인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지를 확인할 길은 없었지요. 그런데 시각장애인의 가족이 직접 나서서 감사를 표시할 정도이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명은 없을 듯합니다. 김선우를 표현하기 위해서 엄태웅은 수많은 시각장애인을 실제로 만나보고 도움을 청하며 노력했던 것이 분명해 보이네요. 그는 단지 몸짓 등의 외적인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급작스레 시각 장애인이 된 후의 미칠듯한 분노와 좌절이라든가, 일상 생활 중의 소소한 사건에서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감정 등의 내면까지, 너무도 섬세한 감각으로 재현해 주었습니다.

 

장애나 병이 실제와 달리 아름답게만 표현되었을 때, 대중들은 단지 드라마를 즐길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실적이고 진실한 연기는, 대중으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며 함께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엄태웅의 맹인 연기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아름답고도 그윽한 향기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한 가지를 꼽는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나는 연기로 피부에 와 닿게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연애고 결혼이고 스펙에 목숨거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니, 조금만 키가 작아도, 조금만 연봉이 낮아도, 조금만 예쁘지 않아도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사랑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하지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장애인의 사랑이란 왠지 특별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강영우 박사의 아내이신 석은옥 여사처럼,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인하고 인생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라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어리석고도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선우와 한지원(이보영)의 사랑은 너무나 평범하고도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한지원은 남들보다 조금 더 예쁘고 당차기는 하지만 그저 평범한 여대생이었는데, 김선우에게 사랑을 느끼고 다가서는 모습에 전혀 머뭇거림이 없었지요. 김선우 역시 초반에는 그녀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기 또한 사랑으로 화답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나중에는 자기 때문에 그녀가 다칠까봐 밀어냈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보면, 평범한 사람 누구나 장애인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엄태웅의 맹인 연기가 남긴 두번째 향기입니다. (아, 물론 여기서는 이보영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저는 이보영의 연기를 근 10년 동안 보아 왔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여배우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단지 배우로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작품 외적으로 이런 결과까지 불러올 거라고는 엄태웅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아닐까요? 최선을 다한 노력은 그만큼의 결과로 보답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하는군요. 아무쪼록 엄태웅의 맹인 연기는 드라마 '적도의 남자'가 종영한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향기로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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