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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남자' 황당하고 어설픈 복수의 시작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적도의 남자

'적도의 남자' 황당하고 어설픈 복수의 시작

빛무리~ 2012. 4. 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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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푹 빠져들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드라마라서 그저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김선우(엄태웅)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는 그가 언제쯤에나 시력을 회복해서 속시원한 복수를 시작해 줄까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건만, 정작 그 때가 되었는데도 통쾌함의 카타르시스를 기다리며 설레기보다는 온통 마음속 한가득 물음표 투성이입니다. 세간의 칭찬이 자자했던 9회의 마지막 부분도 제가 보기에는 참 의문스럽고 이상했는데, 10회를 보고 나니 더욱 황당하다는 생각뿐입니다.

 

13년이라는 기나긴 준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돌아왔으니, 이제부터 김선우의 모든 언행은 엄청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말 한 마디부터 행동 하나까지 모두 치밀한 계산하에, 아주 의미심장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 판국에 김선우가 단순한 과시욕이라든가 기분에 이끌려 행동한다면 그것처럼 웃기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현재 김선우가 보이는 행동거지를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군요. 꾹 참고 지켜보면 나중엔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을까? 애써 좋게 생각해 보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정도로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본론에 앞서, 온갖 신문기사에서 '섬뜩한 반전'이라고 대서특필한 9회에서의 두 가지 에피소드를 언급해 볼까 합니다. 역시 제가 보기에는 둘 다 반전이 아니었거든요. 첫째는 김선우의 점자일기(?) 한 장을 훔쳐간 최수미(임정은)가 그것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비밀을 알아차린 장면입니다. 비밀의 내용은, 기억을 잃은 척했던 김선우가 사실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과, 김선우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이장일(이준혁)이라는 것과, 그 사건은 김선우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최수미에게는 이것이 소름끼치는 반전이겠죠. 하지만 우리 시청자들에게는 반전이 아닙니다.

김선우가 점자를 찍어내려갈 때 그 내용은 분명히 엄태웅의 나레이션으로 흘렀고, 최수미가 훔쳐간 것은 바로 그 점자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점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훤히 알고 있는 상태인데, 도대체 뭐가 반전이라는 거죠? 최수미가 점자를 해독했다는 게 반전인가요? 하지만 그 표독스런 여자아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점자를 해독해서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리라는 사실은 훔쳐갈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 아닌가요? 무용지물로 만들 거라면 훔쳐갈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뭐가 반전일까요?

 

또 하나의 반전은 9회의 엔딩 부분에서 김선우의 초점없던 눈동자가 스르륵 제자리로 돌아오던 장면입니다. 물론 엄태웅의 동공과 표정연기는 훌륭했지요. 혹시 그 소름돋는 연기 자체를 반전이라고 표현한 걸까요? 하지만 설정상으로는 반전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김선우가 시력을 회복했고, 복수를 위해 이 땅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김선우의 멀쩡한 눈동자를 이장일이 목격했다면, 그건 이장일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반전일 수 있겠죠. 하지만 이장일은 끝내 발견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장면에서 반전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9회의 엔딩은 제 머릿속에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김선우는 왜 굳이 이장일과 이용배 부자를 일부러 불러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일까요? 자고로 복수의 묘미는 '정면대결'이 아니라 '뒤통수치기'에 있습니다. 상대 앞에 자기 정체를 명확히 드러내고 대등한 상황에서 벌이는 게임은 엄밀히 말해서 복수라고 하기가 어렵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과거에 배신당하고 뒤통수를 맞았으니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는 것이 바로 복수입니다. 그래서 물론 복수는 올바른 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복수를 하려면 최대한 자신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지요.

김선우는 어차피 재미교포 사업가 데이비드킴의 이름으로 이장일을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예고 없이 그냥 들이닥치는 편이 훨씬 좋았을 거예요. 이장일 검사는 느닷없이 나타난 데이비드킴이라는 사람의 얼굴이 김선우와 너무 닮아서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분명 맞는 것 같은데 시치미를 뚝 떼고 있을 뿐 아니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라져서 돌아왔으니 혹시 다른 사람일 수도 있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만드는 것이 복수를 하기에는 더욱 용이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보다 먼저 이장일의 눈앞에 맹인 김선우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가 돌아왔다"고 알린 걸까요?

 

눈치빠른 이장일은 그러잖아도 김선우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시력을 되찾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에 대해서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데이비드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나타난 거죠. 이건 차라리 김선우가 데이비드킴이라고 이장일에게 친절히 알려준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크~ 놀랐지롱~ 약오르지롱~ 아직도 맹인인 줄 알았지롱~ 근데 나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성공해서 돌아왔지롱~ 이제부터 내가 너한테 복수의 어퍼컷을 날릴테니 각오하시는게 좋겠지롱~" 뭐 이런 건가요?;;;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상대방의 경계심을 최고조로 바짝 끌어올려 놓고서 시작하는 복수극은 난생 처음입니다. 지난 13년 동안 김선우가 제아무리 실력을 쌓았다고 해도, 그 동안 상대방 또한 놀고 있지는 않았거든요. 이렇게 상대의 눈앞에 자기 정체를 훤히 드러내고 싸움을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정면대결이 될 것이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뒤통수치기와 달리 정면대결의 승패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숨겨진 깊은 뜻이 드러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설마 경솔한 과시욕은 아니었겠죠.

이보다 더 지독하게 의문스러운 점은, 김선우가 한지원(이보영) 앞에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고도 그녀를 모른체하는 점입니다. "아무 약속도 없이 떠났다가 이렇게 오랜만에 갑자기 돌아와서 나를 받아달라고 어떻게 말을 해요?" 이런 정도의 말로 설명될 수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염치없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일단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면 진솔한 태도로 다가서야 마땅한 일이죠.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고, 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다가설 수 없다면, 차라리 적당한 때가 이르기까지 모습을 숨기고 그녀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일입니다. 안 그런가요?

 

엄태웅은 복수극의 레전드인 '부활'에서도 사랑하는 여자 한지민을 모른체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복수를 위해서는 쌍둥이 동생 유신혁으로 가장하여 무릉건설 부사장 자리를 지켜야만 했는데, 하필이면 한지민이 무릉건설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마주칠 수밖에 없었어요. 절대 의도적으로 그녀 눈앞에서 알짱거렸던 게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김선우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서... 야비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죄없는 그녀의 속을 까맣게 태우는 거죠?

 

얼마든지 다른 호텔에 묵을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한지원이 근무하는 호텔에 묵고, 어려움에 처한 그녀에게 스카웃 제의를 해서 자기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오도록 만들고, 그렇게 자기 모습을 명확히 드러냈으면서 모른척을 하다니요! 한지원은 김선우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보았지만, 그의 싸늘한 태도에 주눅이 들어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혼자 애만 태우는 중입니다. "내가 준 사진은 끝내 못 보고 잃어버렸나요?" 그녀의 쓸쓸한 독백이 얼마나 가슴아프게 들리던지요.

그가 남긴 쪽지에 쓰인 한 마디... 꼭 당신 곁으로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 달라던 그 한 마디 약속에 기대어 13년간을 그리움 속에 버텨 왔는데,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건만 그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정말 사랑했다면, 얼굴은 모르더라도 목소리쯤은 기억할 수도 있으련만, 그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 남처럼 대할 뿐입니다. "지난 시간의 사랑과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헛된 꿈이었을까?" 지금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재회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사람을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못된 장난입니까?

 

오랜만에 돌아와서 받아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다면, 친구로서 천천히 다가서도 좋았을 것입니다. 금줄에게 한 것처럼 지원에게도 솔직한 말을 털어놓고 협조를 요청해도 안 될 것은 없지 않을까요? 제가 김선우와 한지원이 재회하는 장면을 얼마나 설레면서 기다렸는데, 이렇게 실망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눈앞에서 그렇게 시치미를 떼던 데이비드킴이 나중에 씨익 웃으면서 "사실은 내가 김선우였지롱~" 하고 말하면, 한지원은 너무 반갑고 기뻐서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될까요? 저 같으면 사랑은 뒷전이고 너무 얄미워서 쿠션이 다 터지도록 실컷 때려줄 것 같습니다..;;

 

한편 이장일의 경우는 한지원을 다시 만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입니다. 검사의 신분으로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쯤을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테니까요. 미국의 김선우는 그녀의 거취를 모두 알고 있었는데, 같은 나라 같은 서울에 사는 검사 이장일은 그리워하면서도 까마득히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정말 공교롭게도 '우연히' 호텔에서 마주침으로써 재회하게 되었군요. 이로써 김선우-한지원-이장일의 삼각관계는 13년의 세월을 지나 '같은 시기'에 다시 엉키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도 썩 자연스럽지는 못하네요..;;

하여튼 복수의 시작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꽤나 어설프고 황당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연인과의 재회도, 원수와의 재회도,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맥빠지는 수준이었어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의 주인공 김선우는, 정체를 숨겨야 할 원수 앞에서는 마치 으스대기라도 하는 것처럼 떡하니 정체를 드러내더니, 가장 진실하게 다가서야 할 연인 앞에서는 오히려 정체를 숨기며 살살 놀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앞으로의 전개에서 드러난다면 저의 판단이 틀린 것이겠지요. 10회에서 느낀 실망감이 꽤 컸지만, 워낙 이 드라마에 품은 애정이 깊었던 만큼 앞으로의 전개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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