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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 박지윤의 고백에서 얻은 깨달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강심장' 박지윤의 고백에서 얻은 깨달음

빛무리~ 2012. 3. 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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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에 의해 철저히 훈련되고 만들어진 컨셉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을 볼 때, 특히 나이 어린 아이돌 가수들을 볼 때, 그들이 정말 원해서 저런 모습으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방침에 따르는 것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제각각이니까 그들 중에도 여러 케이스가 있겠는데, 본인이 적극적으로 그 컨셉에 동의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온전히 회사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유독 과한 섹시 컨셉으로 미성년 시절부터 빈번한 파문을 몰고 다녔던 포미닛의 현아라든가, '해피투게더'에서 느닷없이 바닥을 기어다니며 19금 분위기의 춤을 추는 바람에 모두를 당황시켰던 달샤벳 수빈(당시 18세 여고생)을 보면, 본인들이 좋아서 그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서기 2000년, 바야흐로 21세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을 뜨겁게 강타했던 박지윤의 '성인식'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컨셉도 컨셉이겠지만 본인이 원하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설마 그 가사와 그 안무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것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고 들릴지에 관한 예측은 전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경우야 있겠지만, 잘 몰라서 별 생각없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죠. 요즘 청소년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당시에도 웬만한 아이들은 알 것 다 아는 분위기였고, 더구나 박지윤은 스무살의 성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박지윤이 자기를 둘러싼 소문과 악플들에 심한 충격을 받고 가수 활동을 그만두었다는 하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안됐다는 생각보다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 옷을 입고 그런 화장을 하고 나와서, 그런 가사의 노래를 하고 그런 춤을 추면서, 그 쪽 방면으로 온갖 구설수에 오르내릴 것을 전혀 예측 못했단 말인가 싶었거든요. 다 알면서도 각오하고, 또는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여린 마음을 드러내며 잠적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공백기를 거쳐, 그녀가 전혀 다른 컨셉으로 컴백했을 때도 별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규 8집 앨범 발매를 즈음하여 '강심장'에 출연한 박지윤은 "당시엔 잘 몰랐었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게 야한 것인지, 왜 남들이 자기를 그렇게 보는 것인지를 몰랐다는 거였죠. 그런데 최근에 그 당시의 '성인식' 무대를 다시 보았더니 자기가 보아도 너무 야하더라고, 당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비로소 들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와 같은 케이스가 많지는 않겠지만, '몰라서 멋모르고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언젠가 김완선도 컴백 즈음하여 박지윤과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김완선과 박지윤은 외모가 상당히 닮은 듯도 하군요. '하늘색 꿈'으로 데뷔하던 당시 여고생이었던 박지윤의 모습, 특히 그 눈매를 보면 김완선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어딘가 뇌쇄적으로 보이는 삼백안이며, 늘씬한 체격이며, 별로 심한 노출 없이 조금만 진하게 화장을 하거나 몸에 달라붙는 옷만 입어도 상당히 야해 보이는 분위기... 그런 외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녀들에 대한 세간의 오해는 더욱 심해졌을 것입니다. 그녀들의 숨겨진 내면이 어떤지, 대중으로서는 전혀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당시 박지윤의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서 청소년 유해물 관련 세미나가 열렸는데, 자료 영상을 틀었을 때 처음 나온 화면이 '성인식' 무대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교회의 권사였고, 딸이 박지윤이라는 사실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더군요. 어렸을 때 성악 공부를 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박지윤의 원래 꿈은 대중가수가 아니라 조수미와 같은 소프라노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격도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닌 듯한데, 얌전히 성악 공부를 하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가수로 데뷔하더니, 본성과 전혀 다른 유혹적인 컨셉으로 대중의 눈요깃거리가 되고, 온갖 치욕스런 구설수에까지 휘말리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의 심정도 말이 아니었겠지요.

박지윤은 가수로 데뷔한 후 날라리라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더욱 더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었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루머 하나가 퍼지면서, 그 때까지 기울여 왔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요. 온 세상 사람이 자기를 욕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면서, 사람이 싫어지고 모든 희망도 사라지고 삶의 의욕조차 잃었었다고 합니다. 한 선배의 도움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되찾기까지, 그녀가 외롭게 견디어야 했던 공백기는 참으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박지윤의 고백을 들으면서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참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송 등의 매체에서 청소년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그 연령층이 점점 더 어려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혹자들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상관없다고 말하며, 미성년자의 성적 어필이 왜 나쁘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하지 않으면서 날마다 시각, 청각적인 자극만을 거듭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겠습니까? 한창 자신과 세상에 대한 각종 개념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있어, 그러한 방송 문화는 비뚤어진 인간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책임감이나 절제력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무조건 본능에 따라 내키는대로 살아가도 좋다는 식의 느낌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 나빠?"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발생한 결과물에 대해서는, 정작 아이들을 이용하고 자극하여 돈 벌었던 어른들은 추호의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박지윤은 '성인식'을 부를 당시 스무살의 성인이었는데도 너무나 순진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가수들 중에도 그녀와 같은 케이스가 없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12년 전보다는 인터넷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으니 그 시절의 박지윤처럼 '아무것도 몰라요'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모습이 대중의 눈에 정확히 어떻게 비치는지, 그들의 머릿속에 얼마나 적나라하게 새겨지는지는 충분히 인식 못할 수도 있습니다. 10여년이 흐른 어느 날, 박지윤처럼 우연히 자기가 출연했던 오래 전의 방송을 보며 비로소 깨닫고 상처받을지도 모르지요.

어린 가수들의 성을 상품화하는 춤과 노래와 야한 복장들은 지금도 넘쳐나고 있는데,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규제하기는 커녕 차츰 더 개방해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벌써 알 것 다 아는 아이들을 언제까지 미성년의 굴레에 가두어 놓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 궤변의 허울 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어른들의 탐욕이 제 눈에는 보이는 듯하군요. 아이들에게 야한 옷을 입히고 야한 춤을 추게 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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