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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뼈아픈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뼈아픈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빛무리~ 2012. 3.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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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이제 보니 생각보다 참 속깊고 괜찮은 여자였군요. 툭하면 햇빛 알러지 등을 핑계삼아 자기 일을 박하선에게 떠넘기던 얌체에다가,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윤지석(서지석)을 자기가 찼다면서 SNS로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무매너에다가, 자조적인 듯하면서 은근히 오버하는 도끼병 환자에다가... 그 동안 박지선 캐릭터는 별로 좋아 보였던 적이 없는데, 갑자기 너무 어른스럽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변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요. 어쩌면 일관성 없는 캐릭터 연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109회에서의 박지선은 확실히 멋있었습니다. 특히 유치하게 다투고 있는 윤지석과 박하선을 붙잡아 놓고 학생들 가르치듯 훈계하면서 시원스레 화해시키던 장면에서의 카리스마는 정말 짱이었네요.

"됐네, 이제 화해한 거지? 둘이 듀엣곡이나 불러!" 노래방에서 다투던 지석-하선을 단숨에 화해시키고 듀엣곡을 부르라고 시킨 것은 자기 자신이었지만, 정작 눈앞에서 닭살을 떨어가며 듀엣곡을 부르는 연인들의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서럽게 합니다. 애써 초연하려 하지만 결코 초연할 수 없을 만큼,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제 사랑같은 건 안할 거야... 내 주제에 사랑은 무슨..." 작은 포장마차 안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리는 박지선의 대사에는 황량함과 쓸쓸함이 가득한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다가온 줄리엔의 입술이 그녀의 입을 막아버리고... "문디가스나, 사람 말 되게 안 믿네!" 라는 상당히 터프하고 독특한 사랑 고백이 귓가에 종소리처럼 울려 퍼집니다. 꺄~~ ㅎㅎ

물론 달콤하고 설레는 장면이었지만, 줄리엔의 느닷없는 키스가 좀 황당하기는 했습니다. 제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여태껏 줄리엔이 박지선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고작해야 술 취한 박지선을 부축하고는 "이 문디가스나, 택시 좀 잡아주고 갈게요!" 이런 대사뿐이었는데, 그건 매너 좋은 줄리엔이 어떤 여자에게나 베풀 수 있는 정도의 호의였고... 노래방에서 박지선이 특유의 돌고래 개인기를 선보이며 '러빙유'를 부를 때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이 아주 따스하긴 했지만 단 하룻밤의 충동적인 기분으로 키스까지 한 것은 아닐텐데, 언제부터였을까요? 귀엽고 속마음 따뜻하고 좋은 사람인 그녀를 줄리엔이 조금씩 마음에 품게 된 것은.

잠시 후에 닥쳐올 일은 짐작도 못한 채, 그녀가 쓸쓸히 읊어대던 것은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 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아주 좋아하고, 많은 공감을 느끼는 시죠.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다시 이어가기로 하고, 일단은 109회의 또 다른 에피였던 강승윤과 안수정(크리스탈)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고 싶네요.

이 아이들은 분명히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양다리 걸친 여자친구 캐시 때문에 눈물 흘리는 승윤이를 보았을 때, 자기가 당한 일처럼 흥분하며 길로틴 초크로 대신 복수해 주었던 수정이...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낼 줄 모르고 실실 웃기만 하는 스투핏인 줄 알았는데, 수정이가 막말과 욕설을 듣고 눈물 흘리는 것을 보자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여 조연출에게 삿대질을 하고 대들기까지 하는 승윤이... 한밤의 길거리에서 (비록 와이어 액션이 너무 티나기는 했지만) 화려한 턴을 보여주는 수정이와, 그녀가 쓰러져 다칠까봐 얼른 달려가서 부축하는 승윤이... 두 아이의 마주치는 눈빛에는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줄곧 이적-백진희, 강승윤-안수정 커플을 예상해 왔었지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모두모두 행복했습니다" 와 비스므리한 엔딩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윤계상-김지원-안종석 라인에는 해피엔딩의 가능성이 지극히 미미하지만, 다른 사람들이라도 모두 행복하면 좋은 거니까요.

저는 만약 백진희가 이적의 아내가 된다면, 그 또한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없는 결혼이라든가, 88만원 세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취집'이라는 이유로 그 결혼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듯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꼭 한 번으로 끝난다는 법은 없잖아요? 윤계상을 향한 백진희의 사랑은 진짜였지만, 사랑이 지나가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대상이 이적이 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약간 쪼잔한 면은 있지만, 이적 역시 박지선처럼 보면 볼수록 매력있고 괜찮은 사람이더라고요. 그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또 다른 사랑을 찾아서 행복하게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진희에게도 전혀 나쁜 결과는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러나 저는 후반에 접어들면서, 초반의 예상과 달리 이적의 아내가 안수정일 거라는 강력한 암시를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또 급격히 이적-백진희, 강승윤-안수정 라인으로 확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래도 "모두모두 행복했답니다" 식의 엔딩은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이적-백진희 사이에는 아주 미세한 호감이 싹트는 것도 같은데 분명치 않습니다. 오히려 승윤-수정의 빵꾸똥꾸 커플이 훨씬 분명한 감정선을 보이고 있지요. 하지만 사랑에 빠져드는 모습이 선명히 보일수록 비극적인 예감은 짙어져만 가는군요. 등장인물 중 비교적 상처가 적은 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 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박지선이 읊조리던 '뼈아픈 후회'는 자기 안에 갇혀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하지 못했던 아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해석이고, 시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요) 그 당시에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훗날 돌이켜 보니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을 때, 문득 가슴 속에 불어가는 황량한 바람... 그것이 바로 뼈 아픈 후회겠죠.  


우리는 '뼈아픈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 막 사랑을 시작하는 승윤이와 수정이는, 박지선과 줄리엔은 그럴 수 있을까요? 지금 서로를 향한 사랑에 푹 빠져 인생 최대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지석-하선 커플은 그럴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나눔'에서 위로와 즐거움을 느끼며 보다 폭넓은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고 있는 윤계상은, 먼 훗날에도 뼈아픈 후회 없이 지금과 똑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요? ...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 박지선의 입술에 닿던 쓰디쓴 술잔이 달콤한 입술로 바뀌어가는 황홀한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제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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