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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김병욱의 페르소나는 또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김병욱의 페르소나는 또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

빛무리~ 2012. 3. 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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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와 예능을 통틀어 제 마음을 확 사로잡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좀 허전했는데, 고맙게도 오래 전에 종영된 '순풍 산부인과'를 다시 볼 수 있는 경로를 발견했습니다. 무려 13년 전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지금 보아도 여전히 세련된 웃음과 재미를 주는군요. 무려 340회나 되는 대장정 속에 등장인물들의 교체도 많았고 중간의 흔들림도 있었지만, 이쯤되면 가히 명작이라 일컬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김병욱 시트콤 매니아로서 언젠가부터 고작 120부 정도로 너무 짧아져 버린 분량이 새삼 아쉬워지더군요.

'순풍 산부인과'를 보면서 때로는 감개무량했고, 때로는 신기했고, 때로는 서글펐습니다. 쌍절곤을 돌리는 수간호사 김정희와 우락부락한 얼굴에 소심한 성격을 지닌 남자 간호사 표인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지만, 예쁘장한 막내 간호사 역할은 장진영-송선미-허영란의 순서로 바뀌어 갔지요. 그 중 처음으로 등장했던 '장간호사' 장진영의 풋풋한 모습을 보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삶이 문득 애잔하게 느껴졌습니다. 초반에 표인봉은 장진영과 사귀는 사이였지만 장진영의 중간 하차로 그 러브라인은 짧게 끝났고, 나중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연상의 김간호사와 닭살부부가 되었지요.

오지명-선우용녀 부부의 딸들 중에서도 등장인물 교체가 있었습니다. 의사로서 아빠의 병원 일을 돕던 셋째딸 김소연이 유학을 가는 것으로 처리되면서, 바통 터치라도 하듯이 유학중이던 둘째딸 이태란이 귀국하여 그 자리를 맡게 되지요. 새로운 인물 등장에 따라서 또 색다른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순풍' 제작진들은 임기응변도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보통의 경우는 갑자기 상황이 달라지면 스토리가 억지스러워지게 마련인데, 어쩌면 그렇게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질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전의 이야기보다 점점 더 재미있어졌으니 말입니다.

유행어 '빵꾸똥꾸'의 원래 주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해리(진지희)가 아니라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김성은)였어요. 다만 해리는 허구헌날 '빵꾸똥꾸'를 입에 달고 살았던 반면, 미달이는 한 번 정도만 언급했었기 때문에 유행어가 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할아버지를 찾아오신 점잖은 손님 한 분이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미달이를 보고 귀엽다고 하면서 "너랑 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냐?" 하고 묻자, 미달이가 대뜸 "제일 친한 친구요? 빵꾸똥꾸요~~! 하하하, 그 애는 방귀를 되게 잘 뀌어요. 한 번은 수업시간에 방귀 뀌다가 똥도 쌌어요!" 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반가움, 신기함, 감개무량함 등의 갖가지 감정이 교차하면서 '순풍 산부인과'를 보던 중에 가장 친숙하고 정겹게 와닿는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사정상 중간 부분을 못 보고 초반과 후반을 왔다갔다 하면서 보고 있는 중인데, 의찬이 아빠 김찬우가 중간 하차하면서 그 자리에 후임으로 들어온 의사 이창훈의 캐릭터가 왠지 낯설지 않더군요. 때로는 한심해 보일만큼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고, 항상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하이킥3'의 윤계상과 그대로 겹쳐지는 느낌이었어요.

차이점이 있다면 윤계상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인 휴머니즘이 이창훈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과, 장난의 짖궂은 정도가 윤계상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점입니다. 윤계상은 아무리 장난을 좋아해도 어린아이를 속이거나 골탕먹이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이창훈은 툭하면 어린아이들을 장난의 대상으로 삼고 속여넘기면서 즐거워합니다. 미달이와 의찬이는 둘 다 눈치가 빤해서 잘 속지 않는데, 번번이 그 장난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순진한 정배(이민호)였어요. 꼬맹이 민호는 그 때 정말 너무 귀여웠는데, 어느새 훤칠한 청년이 되면서 귀여운 모습이 사라져 버린 것은 좀 아쉽군요. ('해를 품은 달'에서 양명군 아역을 맡아 열연했던 서늘한 눈빛의 멋진 청년이 바로 '순풍'의 꼬마 정배였다는 사실... 모두 알고 계시죠? ^^)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설레는 정배에게 창훈은 거짓말을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무조건 입 큰 아이가 반장이 되는데 너는 입이 작아서 반장은 한 번도 못하겠다고 놀려댑니다. 달리기에서 꼴찌를 하면 선생님을 목마 태우고 교실에 들어가야 하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다가 제일 먼저 걸리면 무조건 청소당번이 된다고 말합니다. 달리기도 못하고 게임도 못하는 정배는 울상이 되어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데, 그렇게 너무 심한 장난을 치다가 정배 엄마한테 원망을 들어도 이창훈은 "죄송합니다" 해놓고는 장난질을 멈추지 못합니다.

E.T. 영화에 푹 빠져 있는 정배한테 "사실은 미달이 할아버지가 사람이 아니라 E.T." 라고 했다가 들통나서 원장 오지명에게 크게 혼쭐이 나고서도 창훈은 또 장난을 칩니다. "E.T.의 정체가 밝혀지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지구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정배야, 너도 앞으로는 E.T.한테 E.T.라고 부르면 안 돼. 모른 척 해야 돼!" ㅎㅎ 심지어는 장난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계속 권오중과 투닥투닥거리며 또 장난을 칩니다. 진짜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죠. 이런 모습은 박하선에게 장난치다가 몇 번이나 곤욕을 치르고도, 그녀를 볼 때마다 장난치고 싶은 충동을 번번이 이기지 못하는 윤계상의 모습과 썩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창훈은 유능한 의사이고 속깊은 친구이며 대인배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상대로 너무 심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은 어른스럽지 못하군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마음속에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머리와 몸은 다 커서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어린시절과 똑같이 성장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사람...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창훈은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마치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처럼 진짜로 몰입했고, 심지어 어르신들을 대할 때도 똑같았습니다. 게임하다가 걸린 원장 사모님 선우용녀를 조금도 봐주지 않고 팔뚝이 빨갛게 부어오르도록 호되게 때리는 바람에 오지명의 분통을 터지게 만들기도 했지요.

그런 이창훈에게서 심한 장난기를 절반 가량 제거하고, 넘치는 휴머니즘을 덧입히면 그대로 윤계상의 캐릭터가 됩니다. 이 모습은 아마도 지난 10년간 조금씩 변화되어 온 스텐레스김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군요. 윤계상은 그의 작품 속에 오랜만에 등장한 페르소나처럼 보이거든요. 어린애같은 미소는 여전하지만, 짖궂은 장난기는 줄어들고 슬픔의 기운이 강해졌습니다. 백발이 될 때까지 어린아이로 남아있고 싶었지만, 모두가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끝내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 동안 '귀엽거나 미치거나'가 방송사의 횡포(?)에 의해 말도 안 되는 조기종영을 맞이하는 등, 여러가지 서러운 일들도 많았지요.

장난감도 함께 갖고 놀고 도시락도 함께 나눠 먹던, 너와 나의 구분이 없던 어린아이의 세상에 살다가, 온통 소유권 분쟁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로 넘어오니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습니다. 타인들과의 '나눔'에서 삶의 위로를 얻고, 몸소 실천하는 휴머니즘 속에서 삶의 기쁨을 얻는 윤계상의 특별한 캐릭터는 아마도 그래서 탄생한 게 아닐까 싶군요. 저는 이제 궁금해집니다. 과거의 이창훈은 그러했고, 현재의 윤계상은 이런 모습인데, 앞으로 등장할 김병욱의 또 다른 페르소나는 어떤 모습일지가 말입니다.

'지붕킥' 이후로는 너무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 때문에 시트콤답지 않다는 비판도 많이 듣고 있지만, 원래의 스텐레스김은 누구보다 유쾌하고 장난기 넘치는 사람이 아닐까 싶군요. 내면에 웃음이 가득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재미있는 작품들을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까지 시트콤 한 장르를 고집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작은 소망이 있다면 잠시 우울해졌던 그의 내면이 다시 예전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이창훈과 같은 천방지축 장난꾸러기 페르소나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백발의 노인이었다가 다시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의 청년으로 돌아간 '신조협려' 속의 노완동 주백통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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