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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세종이 궁녀들에게 귀한 소명을 맡긴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 세종이 궁녀들에게 귀한 소명을 맡긴 이유

빛무리~ 2011. 12.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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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회에 이어 20회에서도 주저앉은 세종(한석규)을 일으키려는 강채윤(장혁)의 거친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계기가 희망 없는 백성에 대한 분노, 그리고 다시 말하려는 의욕조차 보이지 않는 소이(신세경)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고 강채윤은 말합니다. 짐승에게 희망을 걸거나 의욕이 없다는 이유로 분노하는 일은 없으므로, 그러한 전하의 마음은 처음으로 백성을 인간으로 생각하셨다는 증거라고,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원래 높으신 양반님네들에게 있어 백성과 천것들이란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전하께서는 우리 담이를 사람으로 생각하셨으니 그건 틀림없는 사랑이었다고, 그러니 당신의 마음을 의심하거나 흔들리실 필요가 없노라고 강채윤은 세종에게 말합니다. (오늘도 스크롤 압박이 만만치 않습니다. 죄송합니다..ㅎㅎ) 

백성이 글자를 배운다고 해서 금방 세상이 바뀌거나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강채윤은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담이를 데리고 도망가지 못한 건, 우리 담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신기해서였다고 말합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만도 벅찬 백성의 삶 속에서는 그 어떤 욕망도 사치임을 강채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는 백성들 중에서 소이처럼 죽어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너무나 신기하고 부럽고 닮고 싶었기에, 떠나지 않고 담이와 함께 돌아왔노라고 강채윤은 말합니다.

이제껏 아비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왔는데 그조차 세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강채윤은 깊은 허무에 젖어들었을 것입니다. 순식간에 삶의 목표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강채윤 또한 백성의 척박한 삶을 살아왔기에 그 어떤 희망도 의욕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글자를 알면 나도 담이처럼 하고 싶은 것이 생길까... 나도 욕망하는 것이 생길까... 예, 전하... 오직 그것 때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담이한테 생긴 의욕을 지켜주는 게, 담이에 대한 연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전하는 아니라고요? 우리한테 생긴 의욕이 잘못된 거라고요?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고 하는 저 가리온 새끼의 말에 흔들리신다고요?"

강채윤의 진심어린 외침은 이미 세종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지만, 아직도 정기준(윤제문)의 말 한 마디가 생선가시처럼 걸려 있었습니다. "백성은 소이와는 다르다. 소이는 나보다 더 큰 의지를 갖고 있지만, 백성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의지가 없는 자들에게 짐을 떠넘기려 한 것이었다. 원래는 힘을 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책임을 넘기려 한 것이었다. 왕인 내가 백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자 강채윤은 코웃음을 칩니다. "전하, 백성은 말입니다. 천 년 전에도 오백 년 전에도 백 년 전에도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들 먹을 것 못 먹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늘 내지 않았습니까? 백성은 당연한 것처럼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책임을 얼마나 떠넘기실지 모르겠지만, 떠넘겨도 상관없습니다. 책임지지 않을 때도 우리는 충분히 죽을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것 좀 떠안는다고 뭐가 그렇게 달라지겠습니까? 그 책임 좀 떠안고 하고 싶은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도 욕망하는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지옥이십니까, 전하? 전하는 위선자십니다. 전하는 아주 소심한 겁쟁이십니다!"

좋은 말로 해도 될텐데 똘복이 강채윤 저 녀석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 세상이 지옥이라 주장한 사람은 정기준이지 세종이 아니건만, 강채윤은 그 말에 흔들린다는 이유만으로 세종을 위선자며 겁쟁이라고 면전에서 욕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한 노비 강채윤에게 실컷 욕 먹은 임금 세종은... 갑자기 씨익 웃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흐뭇함을 담아, 아주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온 얼굴에 띄웁니다.

불과 한 식경이나 되었을까요? 처참히 살해당한 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끌어안고 차디찬 돌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하늘만 올려다보던 그 때가 말입니다. 그런데 세종은 웃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혼신의 힘을 다해 피터지는 절규로 증명해 준 한 사람의 백성, 강채윤을 보며 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미소 앞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참으로 미묘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통곡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살며시 감싸 안으며 토닥이고 싶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상처가 죽음보다 깊었으련만, 모든 고통을 안으로 갈무리하며 다시 성군의 길로 돌아오신 임금께, 저는 깊은 감사와 존경을 담아 마음으로 큰 절을 올렸지만 저절로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고편에서 나왔던, 세종이 소이를 밀본이라 의심하며 고문하는 장면은 역시 떡밥이었습니다. 설마 그 떡밥에 낚인 사람은 없겠지요? ㅎㅎ 그 모든 일들은 세종의 지시에 따라 소이와 강채윤과, 그리고 조말생(이재용) 대감이 합작해서 꾸민 연극이었습니다. 소이를 비롯한 광평대군(서준영) 처소의 나인들은 모두 한글 창제 작업에 동참해 온 일꾼들이었는데, 이제 세종은 그녀들에게 밀명을 내려 몰래 궁 밖으로 내보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말생은 소이와 궁녀들에게 광평대군의 행방을 밀본측에 흘렸다는 누명을 씌웠고, 대충 고문하는 척 하다가 지방 관청의 노비로 좌천시킨다는 구실을 달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물론 쫓겨난 궁녀들은 지방 관청으로 간 것이 아니라, 계획되어 있던 다른 장소에 집결하여 세종의 밀명에 따라 한글 반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단정한 붓글씨로 한글 교본을 만들고, 동네 각설이 패와 어린 아이들을 모아서 한글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니는 등, 그녀들이 할 일은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김영현 작가의 사극에는 '서동요' 류의 구전동요 에피소드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편입니다. 하긴... 그 떠도는 노래의 힘은 결코 만만치가 않지요. 비록 야사이긴 하지만 그 노래 때문에 신라의 공주가 백제의 왕비로 신분이 변하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일어났듯이, 이제 그 노래 때문에 세종의 한글도 역병처럼 순식간에 번져나가 세상에 일대 파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보니 조말생 대감, 의외로 굉장히 멋있네요. 극 초반에는 태종(백윤식)의 최측근으로서 피의 숙청에 앞장서며 어린 세종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던, 참으로 냉혹하고 원망스런 인물이었지만, 이제 밀본의 무지막지한 수단과 맞서야 하는 세종에게는 조말생 이상으로 든든하고 믿음직한 지원군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조정 신료들 중에 숨은 밀본을 색출해내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절묘하게도 조말생은 직제학 심종수(한상진)를 지목했고 세종은 우의정 이신적(안석환)을 지목하더군요. 아직 물증은 없고 심증뿐이나, 밀본의 핵심인물 두 사람을 정확히 짚어낸 세종과 조말생의 날카로운 직관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의심이 시작되었으니 머지않아 꼬리가 잡히겠지요. 이렇게 밀본측의 대위기가 닥쳐오는가 싶었는데, 세종의 밀명을 수행하던 궁녀들에게도 동시에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윤평(이수혁)이 쫓겨난 궁녀들을 밀본으로 끌어들이자고 제안하는 통에, 그녀들이 관청의 노비로 보내지지 않고 중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밀본에게 발각된 것입니다. 광평대군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세종의 밀명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를 색출해 내기 위해, 정기준은 이제껏 모든 대소 신료들과 왕자, 공주들의 뒷조사를 하고 다녔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설마 천하고 나약한 궁녀들에게 그토록 막중한 임무를 맡겼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되었군요. 이것이 바로 세종과 정기준의 근본적 그릇의 차이였습니다.

강채윤에게 실컷 욕을 먹은 후, 씨익 웃는 한 줄기의 미소로 세종은 모든 고민을 날려 버렸습니다. 수백 년 후의 세상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 글자로 인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단 한 명의 백성 소이를 위해, 그런 소이를 바라보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또 한 명의 백성 강채윤을 위해, 그 둘의 자식으로 태어나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낼 또 다른 백성과, 그리고 계속 이어질 또 다른 백성을 위해, 무조건 한글을 세상에 내어 놓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세종은 가장 약하고 천한 백성을 이토록 사랑했기에, 자신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천한 궁녀들에게 가장 귀한 소임을 맡겼던 것입니다.


소이와 궁녀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후, 강채윤은 그녀들의 작업을 돕기 위해 한 발 늦게 합류했습니다. 세종은 "혹시 필요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이것을 가지고 가라" 하면서 강채윤의 손에 마패를 쥐어 주는군요. (그럼 강채윤의 공식 신분은... 암행어사?) "잘 부탁한다..."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건네시는 임금께 강채윤이 묻습니다. "전하... 제가 단 한 번도 전하께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 아뢴 적 없지요?" 세종은 어리둥절한 듯 되묻습니다. "아니, 왜? 성은이 망극할 일이 있더냐?" 그러자 강채윤은 깊이 허리를 숙이며 아뢰는군요. "이렇게 결정내려 주시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런 강채윤을 세종은 그저 말없이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뿐입니다. 한 명의 아들을 잃었지만, 다행히 또 한 명의 아들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 세종에게 실컷 욕을 퍼부은 후, 혼자서 궁궐 어딘가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는 강채윤의 모습을 보셨지요? 그 때 강채윤이 생각한 것은, 언젠가 부상당한 광평대군을 들쳐업고 산길을 달려 궁으로 도망쳐 오던 그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제 세종의 마음을 알고 그를 믿게 된 강채윤은, 진심으로 세종을 섬길 뿐만 아니라 아버지처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부디 모든 일이 잘 되어야 할 텐데요. 강채윤이 곁을 비운 사이에 궁녀들이 밀본의 습격이라도 받으면 안 될 텐데요. 잔혹한 정기준은 또 그녀들을 가차없이 살해하여 세종의 마음을 뒤흔들려 할테니 말입니다. 여러모로 아슬아슬 불안하지만, 또 그만큼 재미있어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는 '뿌리깊은 나무' 입니다.


*** 2011 'view 블로거대상' 투표가 12월 8일자로 마감되었습니다. 
      그 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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