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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미소, 가장 슬펐던 장면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미소, 가장 슬펐던 장면

빛무리~ 2011. 11. 1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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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백성들도, 신하들도, 임금도... 저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고 날마다 눈물 속에 살아갑니다. 보통은 그 눈물이 꽁꽁 싸매어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때로는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흘러나올 때가 있지요. 12회에서는 특히 그들의 감춰져 있던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1. 강채윤의 절규 (똘복이와 담이의 재회)

궁녀 소이(신세경)는 강채윤(장혁)이 붙인 벽보를 보고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똘복 오라버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복(福)이라는 글자의 수를 놓다가 훔쳐낸 금실이 모자라서 획수를 빠뜨리고 새길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탄생하게 되었던 기묘한 틀린 글자의 복주머니...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똘복 외에는 없을 거라 믿었으니까요. 원래 똘복이 강채윤은 그 벽보를 이용해 밀본을 유인하려던 것이지만, 그것을 계기로 생각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담이, 지금의 소이와 재회하게 됩니다.

강채윤은 소이가 남긴 암호 계언산(係言山) 마의(馬醫)의 뜻을 풀어냈습니다. 말을 치료하는 의원이라는 뜻의 마의는 그 당시 순우리말로 '니마'라고 불렀던 모양이죠. 끝말잇기를 하던 중 똘복이의 '주머니'에 잠시 멈칫하던 담이가 선뜻 내놓은 대답이 '니마'였습니다. 그러므로 계언산은 한자의 뜻 그대로 말잇기를 하던 산을 의미하고, '니마'는 그 벽보를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뜻하는 것이었지요. "말잇기를 하던 그 산에서 담이가 기다린다" 그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똘복이 한 명 외에는 없었습니다.

똘복이를 만나러 가던 소이는 밀본 집단에게 납치를 당하지만,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에 성공하고 홀로 몸을 빼내어 먼저 계언산에 도착합니다. 소이의 현명함으로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꺽새 아저씨의 말을 듣고 눈물을 철철 흘리는 모습을 보고는 혹시라도 꼬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걱정을 좀 했더랬습니다. 그녀가 밀본을 줄줄이 이끌고 계언산에 간다면 두 사람의 오붓한 재회는 커녕, 눈앞에서 똘복이가 밀본에게 살해당하는 꼴을 봐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역시 똑똑한 소이는 그런 바보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계언산에서 똘복을 기다리던 소이는 허겁지겁 달려오는 겸사복 강채윤을 발견하고는 당황하여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깁니다. "저 자가... 왜...?" 적잖이 의아해 하는데, 그 순간 "담아~!" 하고 절규하듯 외쳐 부르는 강채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드디어 강채윤과 소이가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 가엾은 소년과 소녀는 서로가 죽은 줄만 알고, 서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니 왠지 기쁨보다 슬픔이 앞서는군요. 강채윤의 애타는 절규가 그대로 가슴에 맺혀 옵니다.

2. 소이의 눈물

강채윤과 소이의 재회 자체만으로도 눈물바람을 일으키기엔 충분했지만, 소이라는 인물에게 내재된 슬픔 역시 대단했습니다. 출중한 기억력과 좋은 머리를 타고난 것이 소이에게는 오히려 족쇄가 되었던 것이지요. 위험을 무릅쓰고 똘복이를 만나러 나가겠다는 소이를 동료 궁녀들은 모두 만류합니다. 어차피 살아있어서도 안 될 사람이고, 이제 와 다시 만난다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그저 잊으라고, 잊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이가 필담으로 말합니다. 

"나는 잊을 능력이 없어. 난 아무것도 잊을 능력이 없어. 그 날, 오빠랑 했던 말잇기 순서... 의금부 옥사 한쪽 구석에 있던 거미줄 모양... 서찰을 전해 준 항아님의 댕기 빛깔... 아버지랑 헤어지던 그 담벼락의 기와 무늬까지... 다 그대로 그릴 수 있어. 잊으라고? 잊을 방법이 없어. 내가 나를 얼마나 죽이고 싶은지 알아?"

저렇게 별 것을 다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느니만도 못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겠군요.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눈앞에서 죽어가는 끔찍한 경험을 했던 소이에게는, 잊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바로 천형(天刑)이었습니다. 밤낮으로 그 생생한 기억 속에 파묻혀 살아야 하니, 어떻게 한시인들 편한 잠을 이룰 수 있을까요? 가엾은 고백을 들은 동료 궁녀들도 소이를 얼싸안고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이는 그 능력으로 세종의 한글창제를 도와 커다란 공을 세울 수 있었으니, 비록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그만하면 충분히 영광스런 위치에 올랐다 해야겠지요. 이렇게 빛과 그림자, 상처와 영광은 언제나 공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 세종의 미소

세종(한석규)은 12회에서 유난히 많이 웃었습니다. 때로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파안대소를 했고, 때로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신선처럼 담담한 미소를 띠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소 속에 비춰진 것은 참으로 쓰라린 슬픔이었습니다.

우선 인체 해부를 통해 후음(ㅇ,ㅎ)의 표기법을 발명해냄으로써 훈민정음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세종으로 하여금 흥분을 감출 수 없게 했습니다. 그의 작업을 돕던 집현전 학사들과 궁녀들도 모두 기뻐하며 세종께 감축의 인사를 드리는데, 오직 소이만은 똘복이와 만날 일에 정신이 팔려 그 감격스런 순간에 진심으로 동참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소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던 세종은 손수 종이에다가 '소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써서 보여주기까지 했으나, 여전히 소이는 멍한 눈빛으로 다른 생각을 할 뿐이었습니다. 머쓱해진 세종의 얼굴...

게다가 소이는 주군이신 세종께 거짓말까지 합니다. 차마 똘복이를 만나기 위해서 오밤중에 궁궐을 나가겠다고는 할 수 없으니, 가리온(윤제문)을 만나서 발성연습을 하고 싶다는 말로 둘러댄 것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세종은 드디어 소이가 말하고 싶은 욕구를 되찾은 줄만 알고 또 한 번 기뻐합니다. 의욕을 되찾았다는 것은 깊은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는 치유되었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소이의 출궁을 허락한 세종은 나중에 무휼(조진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이가 말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은, 또 다른 희망이 생긴 게 아니겠느냐!" 활짝 웃는 세종의 얼굴... 하지만 가장 믿고 아끼는 궁녀가 그를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제 눈에는 그 웃음조차 슬퍼 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슬프고 아팠던 장면은, 어의가 세종의 맥을 짚고 나서 건강이 악화되었노라고 아뢰는 장면이었습니다. 소갈(당뇨)의 병증이 심해지는 듯하니 과로하지 마시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셔야 한다고 말하는 어의에게 세종은 퉁박을 줍니다. "됐다, 그렇게 안 해도 병을 고쳐야 명의인 게지. 할 것을 하나도 못하게 하면 누군들 못 고치겠느냐?" ...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종의 마음에는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입니다.

"허면... 과인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황송한 질문에 어의는 어쩔 줄 모르고 엎드려 "전하~!"를 외치는데, 세종이 농담섞은 진담을 건넵니다. "내가 이 일의 기틀을 마련해 놓고 죽으려면, 최소한 5년은 필요하다, 네가 책임지거라!" 그러나 어의는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전하, 인명을 재단할 수는 없사옵니다. 충분히 쉬시고 주무시옵고 서책을 멀리 하시옵고..." 하지만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세종은 그 권고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저 황송해하는 어의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세종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그래, 알았다. 어쨌든 너의 성심을 다해 다오... 수고했으니 이만 나가 보아라."

세종 이도는 백성을 위하는 임금이었습니다. 한글 창제를 비롯한 그의 모든 업적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도는 어떻게 그런 임금이 될 수가 있었을까요? 아무리 선량한 심성을 타고 났다 해도, 아무리 어려서부터 수많은 서책을 읽으며 올바른 인성을 쌓았다 해도,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이라고 보기에는 정도가 넘치는 듯합니다. 더구나 권력이란 무릇 사람의 심성을 흐려지게 하는 법인데, 수십년간 왕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면서도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이 백성만을 위하는 마음가짐으로 통치할 수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세종은 아버지의 업보를 대신 갚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서글픈 미소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칼에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던 천하... 세종 이도가 이어받은 천하는 그 핏빛이 채 가시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붉은 천하였습니다. 그 핏자국은 고스란히 세종의 옷자락에 물들었고... 담이와 똘복이처럼 상처받은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아침 저녁으로 미안해하면서, 세종은 평생토록 그렇게 살아왔지요.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어의에게 담담히 묻는 세종의 질문에는,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백성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리라는 결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백성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그토록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백성에게 지은 아버지의 죄를 대신 용서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이렇게 세종의 담담한 미소는 소이의 눈물보다도, 강채윤의 절규보다도 더욱 깊은 슬픔으로 제 가슴에 와 박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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