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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수양의 분노가 세령에게 쏟아진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공주의 남자

'공주의 남자' 수양의 분노가 세령에게 쏟아진 이유

빛무리~ 2011. 9.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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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왕으로 즉위했으니 '세조'라 호칭하는 것이 맞겠으나 그대로 '수양(대군)'이라 칭하겠습니다. 이 드라마의 분위기에 몰입하여 주인공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세조는 결코 적법한 왕이 아니니까요. "치욕스런 공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공주는 오직 경혜공주마마 한 분뿐이십니다!" 라고 외치던 세령(문채원)의 피맺힌 절규가 귓가에 아른거리니, 저는 이 가련한 여인을 공주라 칭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승유(박시후)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으나, 설령 가능하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 평생 고개 못 들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의 운명입니다.

한동안 가슴에 칼을 품고 앉은 채로 선잠을 자야 했던 김승유는, 이제 모처럼 세령의 어깨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던 외로운 그에게, 세령의 가냘픈 어깨는 더없이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줍니다. "부디... 달디단 꿈을 꾸십시오..." 어차피 눈을 뜨면 다시금 차갑고 쓰라린 현실이겠지만, 꿈 속에서만이라도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세령의 당부였습니다.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어린아이처럼 잠들어 버린 승유의 지친 얼굴은 세령의 가슴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놓습니다. 어떻게든 속죄하고 싶지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부족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한편 수양(김영철)은 그토록 꿈꾸던 왕좌에 앉았으나 피로 획득한 권력의 열매는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집현전에서 함께 일하며 친구처럼 지내던 사육신이 반기를 들었을 때, 수양은 어떻게든 그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돌아온 것은 그를 짐승 벌레보듯 하는 눈빛들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죽었다고 믿었던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가 귀신처럼 살아 돌아오더니,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반대 세력들을 규합하여 그의 목숨과 지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애지중지 키워 온 맏딸 세령이 김승유 그놈에 대한 연정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아비와의 연을 끊겠다며 자기 눈앞에서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는 원래도 외로운 것인데, 피로써 그 자리에 올랐기에 수양은 지금 더욱 외롭습니다. 그를 따르는 자들조차 이제는 완벽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그를 왕위에 올리겠다는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며 굳건히 일치단결하여 지금까지 달려온 충복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이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는 그들에게 받았던 협력과 도움이 무거운 빚더미로 변해 수양의 어깨를 짓누르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공신들은 저마다 자기의 공이 더 크다고 주장하며, 끝도 없이 그를 향해 아귀처럼 탐욕스런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신의 한 수가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일들은 모두 왕좌를 얻은 댓가라 여기고 기꺼이 감당한다 하여도, 그 왕위를 간절히 물려주고 싶었던 맏아들 숭(崇)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앓아누워 버린 것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철퇴였습니다. "숭아, 내 너에게만은 종친의 설움을 물려주기 싫었느니라..." 하긴 종친이란 왕족으로 태어났으되 왕은 될 수도 없고, 걸핏하면 역모의 구심점으로 몰려 목숨을 위협받기 일쑤이며, 그렇다 보니 신하들처럼 자유롭게 정치에 개입할 수도 없고, 그저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도록 낚시와 사냥 같은 소일거리나 하면서 조용히 살다가는 경우가 많았다지요. 그런 생활이 적성에 맞는다면 모르겠으나, 커다란 포부를 타고난 사내라면 참으로 갑갑하고 서러운 인생이었겠군요.

종친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수양은 자기 아들에게만은 그런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우를 죽이고 친구를 죽이는 천인공노할 죄를 지으면서까지 애써 그 자리에 오른 이유의 절반 가량은, 짐작컨대 지독히 이기적인 그 부정(父情)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이 때, 그 아들이 젊은 나이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게 되었으니 이보다 허무한 일이 있겠습니까? 수양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듯 뼈아픈 일이었으나, 사실은 이거야말로 하늘이 수양에게 내리시는 진짜 형벌이었습니다.

결국 수양의 맏아들 의경세자는 사촌이신 단종보다도 한 발 앞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이 드라마 속에서도 결코 그의 숨결이 오래 남아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비와 달리 심성이 여리고 선량한 의경세자는 자리에 누운 채 아비를 향해 유언처럼 간절한 부탁을 남기는군요. "아바마마... 부디 누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누이마저 등을 돌린다면, 아바마마는 심히 외로우실 것입니다!" 죽어가면서도 못된 아비의 외로움을 염려하는 착한 아들입니다. 하지만 독한 수양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외롭다니... 네가 있지 않으냐?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고 어서 쾌차할 생각이나 하거라!" 그러나 이미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직감한 의경세자는 힘없이 송구하다는 인사로 답변을 대신할 뿐이었습니다.

느닷없는 세자의 각혈에 충격받은 수양은 불안한 마음에선지, 외가에 맡겨 두었던 둘째아들 황(晄)을 불러들이려 하는데 그가 훗날의 예종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린 나이부터 병약한 탓에 외가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인물로 설정되었으니, 나름대로 역사와 잘 맞아떨어지는 복선이군요. 훗날 수양의 차남 예종은 왕위를 물려받지만, 불과 재위 13개월만에 갓 스무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의경세자의 갑작스런 발병은 끝이 아니라 기나긴 업보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궁궐을 뛰쳐나와 승법사에 머물던 세령은, 그 곳까지 찾아온 김승유의 손을 잡고 빙옥관에 날아들어와 몸을 숨겼습니다. 섬섬옥수로 기방을 청소하고 기생들의 속옷 빨래까지 해주면서 지내야 했지만, 세령에게는 꿈처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승유의 고달픈 머리를 잠시나마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주고 쉬게 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가련한 연인들에게 주어진 행복은 길게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세령의 행방을 탐색하던 신면(송종호)이 공칠구의 발고(發告)를 접수하고 빙옥관에 들이닥쳤던 것입니다.

마침 김승유는 그 자리에 없었고, 홀로 몸을 피하려던 세령은 죄없는 빙옥관 식구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 하여 스스로 걸어나와 붙잡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거듭된 분노로 이성을 잃은 신면은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빙옥관의 건물과 집기들을 사정없이 때려부수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승유의 은신처라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세령이 아무리 절규하며 만류해봤자 신면은 들은 체도 않는군요. 그래도 초희(추소영)를 비롯한 기녀들의 몸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부담스런 신분으로 몸을 의탁한 것 자체가 미안한데, 떠나면서도 엄청난 피해만 끼치고 나오게 되었으니 세령의 마음은 너무도 괴롭습니다. 김승유와 다시 헤어지게 된 것도 원통하지만, 굳건한 사랑에는 믿음도 함께 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것은 견딜 수 있습니다. 다만 죄없는 사람들이 또 다치게 될까봐, 김승유의 은인들이 자기로 인해서 또 피를 흩뿌리게 될까봐 그것이 깊이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만난 아비 수양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얼굴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던 말을 꺼내고 마는군요. "김승유는 어디에 있느냐?" ... "말할 수 없습니다!" ... "네 눈 앞에서 너와 김승유를 숨겨 준 자들의 목을 쳐야 답할 것이냐?" ... 이 말을 들은 세령의 눈이 뒤집힙니다. 가릴 말 없이 아비를 향해 마구 퍼부어댑니다. "또 다시 무고한 자들의 피를 보고자 하십니까? 피비린내 나는 악행을 언제까지 계속하실 것입니까? 그 업보를 자식들이 받아야 정신을 차리시겠습니까!"

한동안 궐 밖에 나가 있었던 세령의 입장에서 보면, 남동생인 의경세자가 앓아 누운 줄을 모르는 상태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생사의 고비를 오가는 장남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수양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뼈아픈 소리가 없습니다. "내 아들이... 내가 그토록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했던 아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업보 때문이란 말이냐? 내 지은 죄가 내 자식을 죽이고 있다는 말이냐?" 부인하고 싶지만 양심에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라 완강히 부인할 수도 없으니 수양의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수양은 그 자리에서 세령에게 내렸던 공주의 작위를 박탈하고 신면과의 혼사도 취소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세령을 신면에게 노비로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신하된 자로서 어찌 금상(今上)의 딸을 노비로 부릴 수 있을까마는, 어쨌든 왕의 뜻이 강경하니, 일단 세령은 노비의 신분으로 격하되어 신면의 집으로 보내질 듯 싶군요. 물론 명색만 노비겠으나 다른 사람 아닌 신면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세령으로서 적잖이 수치스럽고 불편한 일일 것입니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을 테고요.

일국의 임금이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딸을 신하의 노비로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업보를 자식들이 받아야 정신을 차리시겠습니까!" 라고 외친 세령의 한 마디는 자칫 아비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을 만큼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딸자식에게 가장 아픈 곳을 제대로 찔린 수양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 상처가 끝없이 아려 와서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분노의 아픔으로 부들부들 떠는 수양의 얼굴에 겹쳐지는 것은, 세령의 어깨에 기대어 모처럼 깊이 단잠을 자던 김승유의 평화로운 얼굴입니다. 인과응보, 그 말이 과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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