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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의자왕 바보 만들기, 이렇게 해야만 하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계백

'계백' 의자왕 바보 만들기, 이렇게 해야만 하나?

빛무리~ 2011. 8. 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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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임금이란 동정받기보다 지탄받아야 할 대상임을 '계백' 7회에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주인공 계백의 비극은 악역을 맡은 사택가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마땅히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힘을 갖추지 못한 무왕(최종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무진(차인표)이 목숨 걸고 사택비(오연수)에게서 빼앗아다 바친 살생부는, 역시 예상대로 무왕의 무능한 손아귀에서 조금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막강 실세로서 병권마저 장악하고 있는 사택비는 군사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궁궐을 제압하였고, 그나마 윤충 장군의 전갈을 받고 외곽에서 지원하러 오던 적은 수의 군사들마저 사택적덕(김병기)에 의해 길목에서 차단당했습니다. 힘의 열세를 지혜로 극복하지도 못한 무왕은 속절없이 폐위될 위기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신첩은 아직도 폐하만한 분이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사택비의 이 말인즉 허수아비 국왕으로 앉혀 놓고 조종하기엔 당신 같은 멍청이가 제격이라는 뜻이건만, 무왕은 당장 폐위시키지 않겠다는 것만도 감지덕지했는지 사택비의 눈앞에서 살생부를 불태워 버리는군요. 그래도 왕이랍시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눈을 부릅뜨며 안간힘은 썼으나, 실상은 사택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정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긴 사택비의 측근들로 가득찬 궁궐 안에서 무력한 임금 홀로 살생부를 펼쳐 들고 사택가문의 천인공노할 죄악을 선포해 봤자 귀담아 들을 자는 없었겠지요.

살생부가 불타 없어졌음에도 사택비의 요구사항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무왕은 순순히 그녀의 두번째 요구에 승복하여 무진과 계백을 잡아들입니다. 무진을 체포한 명목은 황후 납치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었지만, 사택비의 속내는 사모하는 그를 자기 옆에 두고자 함이었지요. 무왕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제 마누라의 속셈을 다 알면서도, 직접 명을 내려 그 사내를 붙잡아다가 아내에게 바친 셈입니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접고 긍정적인 면을 본다면, 무진을 붙잡아 와도 황후가 그를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순순히 체포 명령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기는 하겠군요.

하지만 무력한 왕은 결국 충신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사택비의 세번째 요구는 바로 의자왕자(노영학)에 관한 내용이었거든요. 이제껏 명목이 없어 해치우지 못했던 골칫덩이 의자를, 이번 기회에 황후 납치 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여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다 결정을 내려놓은 사안으로서, 무왕은 어설프게 저지할 생각 말고 조용히 주저앉아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 사택비의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막을 방도가 없음에 무력한 왕은 슬픔에 잠겨, 옥사에 갇혀 있는 무진을 찾아가 하소연을 합니다. "너와 의자를 잃는다면 나 또한 더는 살 수가 없을 듯하구나..."


무진이 사택비를 납치하고 살생부를 빼앗은 이유는 오직 무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사택가문에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무왕을 곤경에 빠뜨리고 의자왕자를 죽이게 된 셈이었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무진은 절규하며 하늘을 원망하지만, 자신에게 의자를 살릴 계책이 있노라며 실의에 빠진 무왕을 위로합니다. 그 계책이란 사택비의 눈앞에서 의자의 손으로 자신을 죽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납치범인 무진을 의자가 직접 죽인다면 그의 배후 세력이라는 누명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왕은 결국 아들을 살리기 위해 충신의 희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끝까지 우겼다면 좋았을텐데, 결국 의자는 제 손으로 무진을 죽이고 맙니다. 가엾은 무진... 원수의 손에 죽었더라면 비장미라도 있었으련만, 극진히 모시던 어린 주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충신의 최후가 이보다 더 허망할 수 있을까요? 아비의 그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저만치서 계백(이현우)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의자왕자를 원수로 여기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심지어 절반 가량은 오해가 아니라 진실이기도 합니다. 비록 무진이 스스로 희생을 청했으나, 의리는 일방적으로 신하만 지켜야 하는 걸까요? 왕은 제 목숨 살자고 충신을 죽여도 지탄받을 이유가 없는 걸까요?

의자왕의 캐릭터를 조금이라도 살리려면, 결코 이래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못난 아비 덕분에 아들까지 멍청이가 되어버린 딱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전개될 드라마에서 의자왕은 무왕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인데, 조금이나마 매력을 살려 주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자기 손으로 무진을 죽일 수는 없다고 끝까지 버텼다면... 비록 힘은 없지만 어떻게든 무진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는 시늉이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아무래도 무진의 죽음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의자의 손에 죽는다는 설정은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의자가 직접 달려들어 무진을 푹 찌르는 장면만 수정했어도 좀 나았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할 수도 있었지요. [미리 짜 놓은 계획대로 무진은 사택비에게 달려든다. 의자가 칼을 들고 그 앞을 막아선다. 그러나 차마 무진을 향해 칼을 찌르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위기의 순간, 무진은 스스로 몸을 날려 의자의 손에 들린 칼날로 자신의 몸을 관통시킨다...] 이렇게만 했더라도 의자왕의 캐릭터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목숨 살자고 둘도 없는 충신의 몸에 맹렬하게 칼을 찔러넣는 왕자의 모습은 너무도 못나고 찌질하고 배은망덕해 보였습니다.

의자왕자의 뻘짓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찔러 놓고도 무진의 죽음에 몹시 죄책감을 느꼈던지, 사택비를 독향으로 살해할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너무나 단순하고 허술한 것이었습니다. 대놓고 사택비를 직접 찾아가 선물할 것이 있다며 독향을 불쑥 내미니, 사택비는 처음부터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의자를 노려보았습니다. 자칫하면 사택비를 죽이기는 커녕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계획만 발각되어 꼼짝없이 체포될 상황이었습니다. 뭐 이런 바보가 있습니까?

다행히도 그 자리에 은고(박은빈)가 있었습니다. 집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택비에게 접근한 은고는 영리하고 주도면밀한 언행으로 어느 새 사택비의 환심을 사기에 이르렀지요. 은고가 향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인임을 알고 있는 사택비는, 의자가 선물한 독향을 은고에게 건네며 무엇인지 알아보라 합니다. 은고는 살짝 냄새를 맡는 즉시 치명적 독향임을 알았으나 최고 품질의 좋은 사향이라고 거짓말을 한 후, 정작 사택비의 방에서 향을 피울 때는 슬쩍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합니다. 은고의 기민함 덕분에 의자의 멍청한 계획은 탄로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커다란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의자는 오히려 자기가 사택비와 함께 죽으려 했는데 왜 막았느냐고 은고에게 화를 내는군요. 은고가 차분히 말합니다. "황후 한 사람 죽인다고 사택가문과 귀족들이 사라질 것 같습니까?" 이에 의자는 참으로 못난 대답을 합니다.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내가 무진 장군을 죽였고, 계백마저 죽였다. (계백은 죄수로 호송되다가 신라 군사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갔는데, 의자는 행방불명된 그가 죽은 줄 알고 있음) 그런데 내가 살아서 뭣 한단 말이냐!"

그러자 은고가 날카롭게 소리칩니다. "그러니 더욱 살아야 할 게 아닙니까! ... 왕자님, 반드시 제 청 하나는 들어준다 약속하셨지요?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세요! 살아내십시오! 살아서 반드시 보위에 앉아, 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야 합니다!" 이건 뭐 바보온달과 평강공주가 따로 없습니다. 바보 의자왕은 이제 현명한 은고의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더 이상 삽질은 하지 않겠군요. 

그런데 왜 의자왕을 이렇게 못난이 바보 멍청이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제가 모처럼 애착을 가지려던 캐릭터인데 이처럼 망가지고 말았으니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의자왕의 매력이 넘치면 주인공 계백의 캐릭터가 빛을 잃을까봐 우려해서일까요?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아서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관련글 : '계백'의 주인공 살리기 시스템, 그 3가지 증거) 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 주인공 하나 살리자고 주변 캐릭터는 죄다 죽여버려야만 하는 건가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계백의 충성심은 결코 의자왕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직 백제라는 나라와 그 백성을 향한 거라고 봐야할 듯 싶습니다. 어려서부터 계백의 성깔이 보통 아니던데, 이토록 멍청한 주군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섬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 두 사람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면서도 한편으로는 라이벌이 될 테니, 은근히 서로를 견제하며 자주 부딪히겠지요. 예상컨대 충돌이 있을 때마다 빛을 발하는 쪽은 언제나 계백일 것이고, 의자왕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무능한 군주의 모습으로 그려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드라마를 통해, 이제껏 폄하받아 온 의자왕이 재조명될 것을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어렵겠군요. 정말 실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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