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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의 주인공 살리기 시스템, 그 3가지 증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계백

'계백'의 주인공 살리기 시스템, 그 3가지 증거

빛무리~ 2011. 7. 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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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을 2회까지 시청한 후 깨닫게 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철저히 주인공 '계백'을 살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역 '미실'이 주인공을 제치고 드라마의 상징이 되어 버렸던 '선덕여왕'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사실 김근홍 PD는 전작 '선덕여왕'에서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성 악역을 탄생시키는 영광을 맛보았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존재감이 악역에게 밀리는 바람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의 기본 원칙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상황이 돌아가야 하는 것인데, 주인공보다 악역이 부각되면 스토리를 끌고 나가기도 힘들어질 뿐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김근홍 PD는 이번 작품에서 전작의 실수(?)를 거듭하지 않고자 결심한 듯한 기색이 엿보입니다. 초반부터 이 드라마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주인공 '계백'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제작된 이 시스템으로 인해 누군가는 큰 혜택을 입을 것이나 또 다른 누군가는 상당히 억울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증거 1 - 무진(차인표)에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

현재 무진 장군의 캐릭터는 거의 100% 호감으로 다가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목숨 바쳐 무왕(최종환) 일가를 지키려 하는 것은 주군을 향한 신하로서의 충성이기도 하지만, 동문수학한 사제로서의 의리이기도 합니다. 충성과 의리만 지키고 가족을 살갑게 챙기지 않는다면 여성 시청자 입장에서는 무정한 낭군이라 원망도 하겠으나,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자기를 버리고 혼자 도망가라 애원하는 아내에게 "폐하도 버릴 수 있고 백제도 버릴 수 있소. 하지만 당신만은 버리지 못하오. 당신은 이 무진만의 황후라 하지 않았소" 라는 감동적인 대사까지 날리며 끝까지 가족을 지키려는 사랑과 책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충성과 의리, 사랑과 다정함을 동시에 지닌 무진 장군은 그야말로 흠잡을 곳 없는 완전체입니다.

무진의 번뜩이는 칼날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는 적군들의 모습을 보면, 계곡에서 검을 수련하며 읊어대던 말들이 떠오릅니다. "대도야, 미리 용서를 구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대는 나와 한몸이 되어 수많은 목숨을 취할 것이며, 그 업은 우리가 썩어 흙이 되고 바람이 되어 흩어지더라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도야, 다시 용서를 구한다. 이것이 그대와 나의 운명이다." 이 대사에서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선량하고 인간적인 무진의 성품입니다. 한 자루의 칼에게마저 그토록 미안해하며 죄 짓기를 싫어하는 그가 어찌 사람을 죽이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따라 주군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둘러야 하는 무진의 모습에는 영웅의 비장미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무진의 캐릭터가 빛을 발하면, 그 후광은 고스란히 아들 계백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계백은 그냥 처음 등장할 때부터 무진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100점 중에 20점은 거저먹고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 아버지의 아들은 절대 악인일리도 없고 무능한 자일리도 없습니다. 영웅의 아들은 기필코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진에게 매혹된 시청자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계백의 등장을 박수갈채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계백 이서진을 제외하고 철저한 주인공 살리기 시스템의 결과로 가장 큰 혜택을 입는 또 한 사람은 무진 역할의 차인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초반 6회까지만 등장할 예정이나, 출연 횟수와 상관없이 엄청난 영광을 누리며 호감형 스타로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증거 2 - 사택비(오연수)의 평면적인 캐릭터

차인표와 정반대 입장에 놓인 배우가 바로 사택비 역할의 오연수입니다. 주인공 살리기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악역의 몰락을 예고합니다. 악역이 빛날수록 주인공의 존재감은 위축되게 마련이니까요. 사택비는 결코 미실(고현정)의 영광을 재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오연수는 사택비 역할로 인해 훗날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연기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훌륭한 배우라도 캐릭터 자체가 받쳐주지 않으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법이지요.

저는 1회의 엔딩을 보고 당연히 무진과 사택비가 과거에 연인이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알고 보니 무진은 한 번도 그녀를 정인이라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는데, 사택비가 일방적으로 무진에게 집착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택비는 무진에게 왜 나를 버리고 떠났느냐며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원망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길, 무진의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내 곁에 두고 나를 지켜보게 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택비의 캐릭터는 오싹한 스토커에다 싸이코패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소름이 끼칠 뿐, 시청자는 사택비에게서 그 어떤 끌리는 매력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실은 그렇지 않았지요. 그녀에게는 화랑 사다함과 예쁜 사랑을 나누던 소녀시절의 추억도 있었고, 그녀에게 평생토록 순정을 바치는 설원랑과의 로맨스도 있었습니다. 또한 칠숙을 비롯하여 미실 곁을 지키던 신하들은 모두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무서워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충성이었습니다. 미실은 때로 서릿발처럼 냉혹했지만, 때로는 설탕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웠으며, 때로는 따스한 여름바다처럼 자애롭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채로운 미실에 비하면 선덕여왕 덕만의 캐릭터가 오히려 평면적이었습니다.

1회만 보았을 때 저는 오연수가 캐릭터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 여겼는데, 2회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택비라는 캐릭터 자체가 천성적인 싸이코패스로 매우 평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연수의 연기력으로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계속 눈에 거슬렸던 과도한 분장까지도 더 이상 전형적일 수 없는 사택비의 악역 캐릭터에는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이렇게 해서 오연수는 '주인공 살리기 시스템'의 최대 피해자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사택비 캐릭터는 전망이 밝지 않군요.

증거 3 -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계백

계백 장군이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전, 스스로 가족을 모두 죽였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전해집니다. 그 진위 여부가 확실치는 않으나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집에 남아있던 가족은 부인과 애첩들과 딸들, 그러니까 모두 여자들이었지요. 아들들을 비롯한 남자들은 아마도 계백과 더불어 황산벌에 출전했을테니까요. 전투의 패배를 예감한 계백은, 적군의 포로가 되어 능욕을 당하고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손에 죽는 것이 나을 거라며 아내와 딸들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었다 하는데, 아무리 그 논리에 일리가 있다 해도 현대적 해석으로는 너무나 잔혹하고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리 패배할 것을 예상하여 그 이후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마음가짐으로는 부적절했다는 비판 의견도 있습니다. 아무리 전력이 열세에 놓여있다 해도 스스로 자신감을 북돋우며 끝까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훌륭한 장수의 자세가 아니냐 하는 것이죠. 처음부터 패배를 확신하고 임하는 전투였으니, 황산벌에서 계백이 승리하지 못한 것은 그 마음가짐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고도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기 가족을 죽였다는 기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할 뿐만 아니라 계백을 패배주의적인 장군으로 만들고 있으니 결코 주인공에게 이롭지 못한 셈입니다.

그래서 드라마 '계백'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그 부분을 아마도 부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산벌 전투가 한창이던 1회 도입부에서 계백(이서진)은 군사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 계백은 오늘 그대들에게 명한다. 죽지 마라. 반드시 살아남아라. 오늘만큼은 나라를 위해서도 역사에 남기 위해서도 싸우지 마라. 오늘만큼은 왕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싸우지 마라. 오직 그대들의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형제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살아남아라. 그 길은 오늘 죽지 않고 싸워 이기는 길 뿐이다."

저 대사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가족의 존재가 그들이 싸울 수 있는 힘이 되고, 나아가서는 승리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계백이 스스로 가족을 모두 죽이고 나왔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계백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고 다시 만날 가족들이 있어야만 저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 대사는 계백이 결코 패배를 예감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는 처절한 승리의 함성을 올리며 군사들을 격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나중에 가봐야 확실한 것을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계백이 결코 자기 가족을 몰살시키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 무진도 자기 아내에게 "폐하도 버릴 수 있고 백제도 버릴 수 있지만 당신만은 버릴 수 없다" 며 가족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게 마련이니 그런 점에서도 같은 노선을 걸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해서 계백의 캐릭터에 치명적 오점을 남길 수도 있었을 '가족 몰살 사건'은 제작진에 의해 제거되고, 주인공 계백의 앞길에는 장애물 없는 탄탄대로가 펼쳐졌습니다.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의 눈부신 후광을 입었고, 그의 존재감을 위협할만한 매력적인 악역도 없으며, 그의 인품을 추락시킬만한 비인간적 에피소드도 미리 치워졌습니다. 이제 완벽한 호감형의 영웅으로 탄생한 계백은 그 비극적 운명으로 인해 더욱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며 사로잡을 것입니다. 흠... 얼마나 멋있을지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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